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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9. 살아있지 않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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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살아있지 않은 자





그가 살고 있는 스트라우스 가, 크게는 카스트 지부의 제한구역(Restricted Area)에 속한 이곳은 청년들이 구직난에 시달리는 곳이었다. 중심부인 ‘코어’에서는 이미 20년 전 ‘영속 순환(Permanent Cycle)’이라는 물질 순환 체계를 완성했고,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영속 순환이 가능하기 위해서 몇 가지 제약조건이 필요했는데 그 중 하나는 철저한 인구통제였고, 생식기능을 통제하기 어려운 ‘정상인류(Normal Person)군’에 까지 그 체계가 적용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직업이 로봇으로 대체되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극히 제한적이었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일들 예를 들면, 음악가나 연출가 같은 직종이 ‘중심부 사람들(The Core)’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는 그들 지역 스스로 자급자족에 필요한 파트타임으로 영속적이지 못하고 법의 보호도 없으며 미래조차 보이지 않은 일들 뿐이었다.







그는 열여섯의 나이에 일을 시작했다. 그의 가족은 가난했고 생계를 담당했던 모친은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려 일을 그만 둔 뒤 계속 집에서 누워 지냈다. 아직 미성년인 그를 위해 최저생계비가 지급되어야 했으나 그는 집안의 가장이 아니었고 그들의 가족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그것이 그가 또래 친구들을 등지고 사회에 홀로 나서야 했던 이유였다.





그에겐 어떤 계획이나 미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하루하루가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숨막히는 존재였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시간을 내 부지런히 미래를 계획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터무니없는 성공 사례 집이 미디어를 통해 나올 때마다 그는 나약하고 게으른 자신을 자책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열정적이지 못했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체력이 약했다. 주변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힘든일이었고 말을 하는 것조차 피곤했다. 일상에서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단지 노를 잃은 돛단배처럼 물살에 이끌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그가 열 아홉살이 되던 해 그의 모친은 산재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모친이 죽으면 굉장히 슬플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경조사 휴가로 오랜만에 긴긴 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더 이상 생활비(대부분 모친의 의료비에 충당해야 했던 비용들)가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그는 야간 일을 그만 두었다. 모친이 사망하자 모든 생활여건이 나아졌고 그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답답함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숨을 크게 쉬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쉽사리 해소되지 못했다. 그 답답함은 숨을 쉬거나 오래 말하는 것을 방해했는데 지속적인 사람과의 대화에서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또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듯 고심한 끝에 내뱉은 문장 하나로 겨우 막혔던 숨을 잠깐 내쉴 수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많아지는 날은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 중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놀라게 했던 말들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 그의 심장을 다시 벌렁거리게 만들었고 뒤통수를 뜨겁게 달궜다. 그래서 이른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들지 못했는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런 다음 날은 어김없이 피로와 후회가 몰려왔다.





그는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음으로 기인하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겐 어떤 목표가 없었고 단지 하루가 그저 아무일 없는 평온한 상태이기만을 바랬다. 또 평소에 그를 괴롭혔던 것들, 예컨대 일이 잘 안 된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가 계속 엮인다거나 하는 것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 오는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는 즐거움에 무감각해져버렸다.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자기 차례가 되어 주문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그 오랜 인내와 노력에 대한 보상감과 쾌감이 있기 마련이건만 그에겐 그것이 단지 또 하나의 힘든 과업이 지나간 것에 불과했다. 즐거움 없이 이어지는 나날의 계속됨은 슬픔이나 두려움, 불안함과 같은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마음속에 때가 묻은 듯 쌓여만 갔다. 누군가의 칭찬에도 가슴이 뛰지 않고 여인의 상냥함에도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그는 누구에게나 다가올 그러나 달갑지 않은 죽음이란 존재를 기꺼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