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12. 아르바이트
12. 아르바이트
[앨버트의 회상 시작]
“야. 너 무슨 일 있냐? 얼굴이 왜 그래?”
남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를 보고 갑자기 걱정하듯 묻는 남자의 태도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지?”
아무렇지도 않은 그에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남자의 태도에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이 사람은 정말로 걱정되서 물어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표정이 어두우니까 내 앞에서 만큼은 인상을 펴고 다니라는 것인지 도저히 그 집요함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집요함에 숨이 막혀 짤막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무일도 없다고 대답했다.
“아닌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남자는 마지막까지 의심스럽다는 말을 남기고 이내 부담스럽던 집요함을 거둬들였다. 그는 남자의 집요함에 진이 빠진 듯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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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5시쯤 되면 아기 부모님들께서 먼저 도착하실 거에요. 그 전까지 홀 셋팅이 마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30명 정도니까 5인 테이블로 좌우 3개씩 깔아주시고 무대 옆에 부모님용 테이블 작은 걸로 갖다 놓고 앞에 칸막이 놓으세요. 30분전부터는 입구에 액자랑 선물 셋팅해 주시고. 조이, 당신은 손님들 오시면 스티커 붙여줘. 거기 오빠 둘은 있다가 영상 끝나면 바로 식당가서 케잌 들고 여기 칸막이 뒤에 대기 하다가, 사회자가 부르면 무대 중앙에 셋팅하세요. 식사 때부터는 손님들 빈 접시 잘 빼드리고. 그리고… 짬맨! 그래 오늘도 수고해줘요. 오늘 마지막 행사니까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퇴근합시다.”
노란색 올백 머리의 키가 큰 매니저는 하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격려했다. 신사다운 매니저의 모습에 여직원들은 얼굴을 붉혔고 입가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남자들은 어렸지만 여드름이 났거나 몸이 깡말랐거나 머리가 부스스했고 그에 비해 여자들은 피부가 하얗고 머릿결에 윤기가 흘렀으며 허리가 잘록하고 다리가 시원하게 잘 빠졌다. 여자들은 같은 또래의 남자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보이지 않았고 자기들 보다 나이가 많지만 깔끔하고 어른스러운 매니저에 대해 이야기 하기 바빴다.
테이블 셋팅이 끝나고 한산해질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온 사람들은 행사장 내 생각보다 사람이 적자 무안한 듯 스마트 폰을 꺼내 시간을 떼우기 시작했다. 행사 시작하기 10분 전 쯤 그는 무대 옆 테이블에 두었던 셋팅 도구를 수거하러 홀로 들어갔고 그 사이 손님들이 우루루 몰려오기 시작했다. 정문에서 사람들 소매에 스티커를 붙이던 여자직원은 줄이 엘리베이터까지 길어지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반대쪽 홀에 있다 온 매니저는 입구가 붐비는 것을 보고 마침 홀에서 빠져 나오고 있던 앨버트를 붙잡고 같이 스티커 작업을 주문했다. 그는 말주변이 없고 인위적인 웃음을 만들지 못했기에 사람들, 특히 나이가 많은 남자들의 소매에 스티커를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사이 행사는 시작되었고 입장하는 사람들의 수가 현격히 줄어들자 매니저는 여자직원을 불러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앨버트는 혼자 남아 늦게 온 사람들의 소매에 스티커를 붙여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 멀리서 남자 둘이 낑낑대며 사람 키보다 높은 케잌을 들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중 한명이 그와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야속한 눈빛으로 그를 매섭게 노려본 뒤 홀로 들어갔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다 빠지자 직원들은 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도 빈 접시를 치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때 아까 그를 야속하게 쳐다보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야! 너 뭐했냐?”
“예?”
“뭐 했냐고!”
남자는 화가 난 듯 그에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는 화가 난 남자의 상태만으로도 황당했지만 같은 아르바이트 주제에 매니저가 할 법한 질문을 그에게 던지자 어이가 없었다.
“너 나랑 케잌 나르기로 했잖아! 뭐했냐고!”
그제서야 그는 남자가 화가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게으름 피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굳이 그런 일을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대답했다.
“…매니저님이 시켜서 스티커 붙였는데요.”
“와. 이 새끼 봐라. 완전 뻔뻔하네. 사람도 없던데 무슨 스티커를 붙여!”
남자는 화가 단단히 난 듯 그를 마구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접시를 치우던 여자들은 남자의 큰 소리에 수근대기 시작했고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남자 때문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그 역시 얼굴이 상기되었다.
“뭐 하는 거에요?”
다행히 매니저가 여직원과 함께 홀로 들어왔다.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은 매니저가 오자 급히 수습되었고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그저 멍해있었다.
“왜 그래요? 일 다 끝났는데. 자 얼른 마무리하고 집에 갑시다.”
매니저는 구태여 둘이 무슨 일로 얼굴을 붉히는 지 알고 싶지 않았고 그저 빨리 홀 상황을 정리하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여직원과 함께 퇴근하고 싶었다. 매니저가 홀을 다시 나가자 남자는 그를 보며 한마디 말을 툭 던지고 등을 돌렸다.
“야! 똑바로 해라!”
그는 남자의 태도에 화가 났고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더 이상 일을 계속 끄는 것이 사람들을 더욱 피곤하게 할 뿐이라 생각해 말 없이 혼자 분을 삭히며 일을 했다. 하지만 접시를 치우면서도 심장은 계속 벌렁거렸고 머리 속에서 계속 화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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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6시까지 설치 마무리 해야되니까 빨리 빨리 합시다. 요렇게 세 명은 백실장이랑 건너편 탑 설치하고, 아저씨 둘은 나랑 여기 하면 되요. 좀 있으면 차 오니까 물건부터 나릅시다.”
검은색 스포츠 선그라스를 낀 구릿빛 피부의 40대 남성이 팔짱을 끼고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그는 휘트니스 선수와 같이 딱 벌어진 어깨와 불룩 튀어나온 팔 근육을 가지고 있어 능히 삼두근 만으로도 사람을 때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운동장 정문으로부터 파란색 용달차가 도착했고 화물칸 천막을 걷자 단단하고 무거워보이는 길죽한 쇠파이프들이 겹겹이 쌓여 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 두 명을 시켜 차 위에서 파이프를 들어 밑에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시켰다. 단단하고 육중한 쇳덩어리가 어깨에 닿자 아무리 단단한 몸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그는 단지 말랑말랑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두 명이서 파이프 묶음을 오른쪽 어깨에 메고 앞으로 전진하는 동안 다리는 부들부들 떨렸고 과연 저것을 오늘 안에 다 옮길 수 있을 지 의문마저 들었다. 그들은 부장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쇳덩어리 무게에 밀려 끌려가듯 전진했다.
곧 어두운 통로를 지나 환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은 넓게 잔디가 깔린 대형 축구장이었다. 오늘 그곳에서는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가 있었고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무대 설치 준비를 위해 군데 군데 자리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운동장 한 가운데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메인 무대가 놓여 있었고 그 무대 위에는 양 끝으로 거대한 조명 탑이 우뚝 솟아있었다. 무대 정 중앙과 양 옆에는 거대한 모니터가 설치되어 콩알만한 사람이 거대하게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들은 A4구역 객석 중간 쯤의 조명탑을 설치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장정 7명이서 한 시간 가까이 차에 있는 파이프를 실어 나르는 동안 그들은 말이 없어졌고 이미 허리병이 도진 사람이 서너명에, 옷은 쇳덩이에 묻은 먼지로 더렵혀져 있었다. 그들은 이 아르바이트 일에 벌써부터 회의를 느꼈고 몇몇은 그냥 포기하고 도망칠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건설 현장'은 일이 힘든 만큼 시급이 높기에 작업자들이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왔지만, '행사 보조'라는 일은 시급이 저렴하고 마치 삐에로 아저씨가 풍선을 나눠주는 것처럼 가벼운 일로 꾸며 구인광고를 내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중노동을 드리부어 작업자들의 뒤통수를 쳤던 것이다.
“개새끼덜. 진짜 존나 부려먹네.”
10분간 휴식시간이 주어졌을 때 한 곳에서 담배를 피던 남자가 푸념하듯 말했다. 그의 말투는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가 곁들여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실소 하게 만들었다.
한쪽 면이 두툼한 파이프로 바닥을 지탱하고 정사각형 모향으로 1층씩 탑을 쌓아 올라갔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둥근 파이프를 연결하고 쇠로 된 직사각형의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양 쇠파이프에 걸어 발판을 만들었다. 그 발판을 딛고 그들은 1층 씩 계속해서 탑을 쌓았다. 그들은 안전조끼를 입었지만, 누구 하나 안전고리를 작업대에 거는 사람이 없었고 그걸 기다려줄 관리자도 없었다. 약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탑이 완성될 무렵 매니저는 사람들에게 한층씩 올라서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밑에서부터 거대한 트러스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트러스는 무거우니까 시간 끌면 안돼. 밑에서 올려주면 바로바로 끌어올려야돼.”
매니저가 미리 이야기는 했지만 막상 거대한 쇳덩이가 밑에서부터 올라오자 그 무게가 터무니 없어 잡고 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밑에서 보고 있던 매니저는 소리치며 욕을 했다. 결국 트러스가 중간에서 올라가지 않자 매니저가 저승사자처럼 쇠파이프를 집고 올라와 트러스를 잡고 낑낑대고 있는 그를 도왔다. 그렇게 한 개의 트러스가 탑 꼭대기에 설치되자 반대편 탑에도 똑같이 트러스가 올라갔다.
이제 진짜 끝이라는 생각에 떨리는 팔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무렵, 부장이 그를 지목해 쇠와이어를 꼭대기에 걸고 오라고 말했다. 도대체 쇠와이어를 한 손에 들고 어떻게 10m 높이의 탑을 한 손으로 올라가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쇠와이어를 허리띠 고리에 걸고는 한 쪽 기둥을 타고 천천히 10m 높이의 탑을 올라갔다. 어떤 안전장치도 없었기 때문에 자칫 발을 헛딛으면 그대로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기둥 사이 붙은 좁은 발디딤판을 한 칸 씩 천천히 밟고 위로 올라갔다. 높이가 4층 정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살아서 내려가야한다는 강한 의지로 마지막 한 층을 마저 올라가 가까스로 꼭대기에 쇠와이어를 달았다. 그리곤 왔던 기둥으로 천천히 다시 내려갔다. 밑에서 매니저들은 그 광경이 재미있는 듯 실실 웃었다. 다른 탑도 마저 달고 오라는 말에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부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고 못마땅한 듯 자신이 와이어를 잡고는 원숭이처럼 탑 정상까지 올라갔다.
설치가 다 끝나자 하루 일당을 현장에서 바로 주었다. 그 일당이라 함은 햄버거 세트 2개 정도 사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이었다. 그들이 하루 종일 일하며 겪은 위험에 비해 터무니없는 보상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서는 데 왼쪽 허리 셔츠가 찢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 알반데 그걸 왜 했어요?”
점심에 투덜대던 사내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는 그다지 데꾸할 힘도 없었다.
“하루 종일 저렇게 시키고 돈은 이거밖에 안 주는 데 저 놈들 말 곧이 곧대로 다 들으면 안돼요. 그런다고 쟤들이 돈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다쳐도 보상 하나도 못 받아요. 아저씨 너무 착해보여서 말해주는 건데, 여기서 그렇게 일하면 손해는 아저씨가 다 봐요.”
사내는 담배를 물며 걱정해주는 듯 그에게 말을 걸었으나, 그는 사내가 내심 받은 일당을 뺏지나 않을까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사내는 “그럼 다른 곳에서 또 봅시다” 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앨버트의 회상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