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14. 동료
14. 동료
[앨버트의 회상 시작]
어두운 화장실 좁은 창문사이로 빛이 새어나온다. 빛은 두 세가닥으로 쪼개져 깨진 거울조각을 비스듬히 빗겨 지나간다. 화장실은 물기가 마른 지 이미 오래되었다. 타일 사이 낀 푸른색 곰팡이는 화석처럼 단단하게 굳어졌다. 남자는 깨진 거울에 비친 조각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본다. 퀭한 눈과 다크서클, 얼굴 군데 군데 살이 들어가 검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남자는 자신의 얼굴이 어쩌다 이렇게 피곤해져 버렸는지 알 지 못했다. 어떻게 보아도 생기가 돋아날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을 얼굴을 바라보다 초록색 후드티가 달린 상의를 들어올렸다. 깨진 거울 속에는 앙상한 그의 맨 몸이 비춰졌다. 그 앙상한 몸에는 작고 빨간 두드러기 같은 점들이 목부터 시작해 팔, 등, 허리, 배까지 퍼져 있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며 한동안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것이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자 곧 측은해졌다. 어떻게 자신의 몸에서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드디어 신의 저주가 자신에게 직접 이르렀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쇠 독이야.”
탁자 위에서 도시락 돈까스를 한덩이 집어 먹으며 그의 동료가 말했다.
“뭐 에이즈라도 걸린 줄 알았냐. 너 작업할 때 덥다고 반팔티만 입고 쇳덩이 드니까 그런거 아니냐. 이 형님은 말이다, 아무리 더워도 절대 내 살갗에 더러운 파이프 갖다 대지 않는다고. 왜냐. 그놈덜이 파이프 안 씻을 껄 아니까. 걔덜이 뭐 작업 끝나면 파이프 하나 하나 닦아 가면서 아이고 내새끼덜 오늘도 수고했네 할 꺼 같냐. 그냥 대충 쳐 박아 뒀다가 또 일 생기면 꺼내쓰고 그러는 거야. 작업하다 보면 흙먼지는 기본이고 거기다 오줌 싸는 놈도 있어. 그러니 살갗에 갖다 대고 부비부비하면 쇠독이 생기것냐 안 생기것냐. 쯧쯧.”
입술이 유난히 두꺼운 사내는 돈까스를 입에 가져다 오물 오물 씹어가며 그가 한심스러운 듯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앨버트는 멍하니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가 가진 증상이 유독한 것이 아니라 단지 더러운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우울함을 느꼈다.
“야 폭탄머리야. 너 오늘 갈꺼냐?”
두꺼운 입술이 옆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펴대고 있는 폭탄머리 남자에게 말했다. 폭탄머리는 관심없는 듯 줄 곧 티비를 보며 계속 담배 연기를 뿜었다.
“아이 XX놈아. 담배 냄새 나잖아. 밥 먹는데. 예의가 없어. 예의가.”
두꺼운 입술이 연신 투덜댔지만 폭탄머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티비를 봤다. 담배 한개피가 끝나자 폭탄머리는 일어나 멍하게 있는 앨버트를 보면서 “아 XX 존나 재미없어.” 하고는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
어두운 실내에 싸이키 조명이 화려하게 돌아간다. 무대는 검은색 런닝을 입은 디제이가 음악 소리에 몸을 맞춰 흔들어대며 소리를 늘렸다 줄었다 한다. 사람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듯 눈이 풀려 흐느적 거리며 음악에 몸을 맡긴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쿵쿵하고 묵직하게 울려대는 소리에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야. 잘 들어. 통성명 필요 없어. 눈 마주치고 3초, 귓말 3초, 주거니 받거니 몇 번하다 여자가 웃는다. 그럼 바로 고고씽이야. 공주 같이 거만한 애들은 걍 패스하는거야. 알았냐?”
두꺼운 입술은 앨버트에게 자신이 하는 것을 잘 보라는 듯 여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여자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더니 여자를 향해 입으로 뭐라 말했다. 여자는 그를 한번 쭉 훑어 보더니 잘 안 들린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다시 여자의 귀에 대고 무어라 말을 했고 여자는 그의 말에 기겁하듯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남자에게 무어라 말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두꺼운 입술은 패잔병이 되어 자리로 돌아왔다.
“뭐라고 했는데?”
“안녕? 바지 벗겨 줄까?”
“이거 완전 또라이네. 그래서 뭐라던?”
“혼자 자위하란다.”
폭탄머리는 두꺼운 입술에게 욕을 하며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두꺼운 입술은 자신의 패인을 알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는 테이블에 놓인 맥주를 마셨다. 폭탄머리는 테이블 위에 맥주 잔 하나와 양주 잔 하나를 꺼내 술을 따른 뒤 양주 잔에 불을 붙였다. 양주 위에 푸른색 불꽃이 일어나자 양주 잔을 들어 그대로 맥주 잔 속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맥주잔에 있던 거품이 순식간에 잔을 타고 올라와 잔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폭탄머리는 맥주잔을 그대로 들이켜 한 잔을 말끔히 비우고는 트림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서 홀로 춤을 추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자의 뒤로 다가가 살며시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고 음악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여인은 살짝 뒤를 돌아 폭탄머리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없이 계속 춤을 추었다.
“야야. 저거 보이냐. 저게 바로 흐름이야.”
두꺼운 입술은 잔에 남아있던 맥주를 들이키고는 다시 반대쪽 방향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여자의 뒤로 다가가 허리에 살포시 손을 얹자 여자가 번개같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두꺼운 입술은 당황했지만 다시 넉살 좋게 리듬을 탔고, 실실 웃으면서 여인의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가 그의 따귀를 때렸다. 두꺼운 입술은 얼굴이 시뻘개져 도망가는 여인의 뒷모습에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고 그 광경을 본 앨버트는 그저 재밌다는 듯이 킥킥 소리내며 웃었다.
몇 번의 무대가 반복되고 테이블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자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겼다. 두꺼운 입술과 폭탄머리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앨버트는 계속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취했다기 보다는 시간이 늦어 슬슬 몸이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 한 여자가 그의 건너편에 앉았다.
“앗. 우리 자리가 아니네. 미안해요.”
여자의 눈웃음이 그는 퍽 마음에 들었다.
“혼자에요?”
“… 지금은요”
그의 대답이 싫지 않은 듯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저도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다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앨버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취했어요?”
“… 아니요… 졸려서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인은 이해한다는 듯 무관심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졸리면 집에 가면 되잖아요?”
“… 음… “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피식하고 웃었다.
“신데렐라. 기다려요. 12시가 넘었는데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네요. ”
“에?”
그는 눈을 희미하게 뜨며 피식거렸다. 여인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한마디 말로도 여자는 그가 모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는 그냥 일어날지 고민하다, 그가 애써 생각해 낸 재미없는 농담에 그래도 끝은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다.
“그럼 그쪽이 왕자?”
“… 음… 아니요… 집. 사. 요.”
“아\~?”
“열쇠를 들고 가 버렸거든요… 마. 차. 키.”
여자은 그의 또박또박 입모양에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여자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한참을 웃던 여인은 웃음을 그치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엔 왠지 모를 동정심이 서려있었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그만 기다려요. 이미 다른 사람이랑 집에 갔을 거에요.”
앨버트는 여인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눈썹을 치켜올려 놀란 표정을 짓다 다시 미소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인은 그를 뒤로 한 채 가버렸다. 그는 멍하니 테이블에 놓인 술잔을 쳐다보며 계속 입가에 슬픈 미소를 지었다. 마치 다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한 쓸쓸함과 외로움이 흘렀다. 그는 혼자였다. 신나고. 시끄럽고. 정신 없는 이런 세상에서도.
“이봐요. 집사 아저씨. 우리 춤이나 출래요?”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장소에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빛이 교대로 번쩍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가수들이 노래하는 무대는 텅 비었고 오른쪽 구석에서 한 남자가 계속해서 비트박스를 만지며 몸을 흔들거렸다. 남자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무대 중앙에 섰다. 여자는 남자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어댔다. 남자는 여자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좋았다. 남자는 춤을 어떻게 춰야 할 지 몰라 엉거주춤했고 여자는 남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남자는 여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남자 앞으로 바싹 몸을 붙여 팔을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갖다 대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몸을 흔들었다. 그도 그녀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따라 몸을 흔들었다. 그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씨. 피곤하다. 여기 여자들이 왜 이렇게 하나같이 인성이 안 좋냐.”
두꺼운 입술이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이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앉은 폭탄머리는 맥주를 마시며 콧방귀 쳤다. 두꺼운 입술은 탁자에 있던 남은 맥주를 마시고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쟤는 혼자 뭐하냐?”
폭탄머리가 두꺼운 입술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멀리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그들과 같이 왔던 남자가 홀로 몸을 흔들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앨버트의 회상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