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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15. 아르바이트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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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르바이트 Ⅱ



[앨버트의 회상 시작]



뜨거운 태양에 몸이 녹아내릴 듯 대지를 달구는 오후 3시의 현장에는, 사람이 일을 한다기보다는 사람의 모습을 한 아무 생각 없는 동물들이 관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500kg 짜리 장비를 카트에 실어 화물전용 EV를 향해 밀고 가는 동안 그 누구도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위험하면 알아서 비켜가겠거니 하며 밀고 또 밀었다. 현장에서는 물건을 끌다 카트가 벽이나 차에 부딪혀 장비가 파손되기도 했고, 심한 경우 벽 사이에 사람 손이 끼어 손가락이 으스러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무기력한 날씨 앞에서 ‘안전’에 대한 생각 따윈 할 수 없었다. EV 안에서 물건이 들어오기를 멍하니 보고 있는 앨버트를 보던 두꺼운 입술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야! 뭐해! 장비 들어가잖아! 나와!”





앨버트는 그의 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재빨리 EV안에서 빠져 나왔다.





“더위 먹었냐?”





동료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꺼운 입술은 한심하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D동 EV 근무자.’





무전기에서 두꺼운 입술을 호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폭탄머리 였다.





“여기 근무자.”
‘안전 근무 하십쇼’





두꺼운 입술도 똑같이 무전기에 대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곤 앨버트에게 고개 짓하며 근무지 밖으로 나갔다. 그들에게 ‘안전 근무’는 캠프 옆 식당에서 일을 좀 쉬자는 일종의 암호 같은 거였다. 큰 현장에서는 보안 문제로 개인 소유의 물품들이 전부 압수되었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무전기였다. 그리고 무전기는 중간관리자부터 고용주까지 다 듣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암호가 필요했다.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의 식당에 들어서자 수많은 인부들이 그곳에 앉아 삼삼오오 휴식을 취하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오른쪽 구석 자리에 폭탄머리가 먼저 와 담배를 피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시원한 음료수가 두 개 놓여있었다.





“너. 이 새기. 어제 어디 갔다 왔어?”





폭탄머리는 두꺼운 입술의 물음에 말없이 눈웃음만 지었다.





“성공한거야?”





두꺼운 입술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폭탄머리를 동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폭탄머리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어제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 했다. 그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일말의 흥분도 없이 조곤 조곤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를 보자 더욱 진실처럼 느껴져 둘은 화가 났다.



“난 그런 인스턴트식 말고. 진짜 사랑, 할거야.”
“병신. 니 평생 사랑은 오른손일게다. 아마”
“덕담 고맙다. 이 개새야.”





그들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키가 큰 장정 셋이 뒷편 테이블에 와 앉았다. 그들의 안전모에는 본사 직영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곧 매점에서 한 남자가 가슴 한 웅큼 먹을 것을 사들고 와 테이블 위에다 풀었다. 그들은 전투적으로 먹어대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일하기 싫다. 진짜. 이 더운 날씨에 꼭 일을 시켜야 되냐”
“일 안 하면? 일당도 없는데?”
“아씨. 일당 안 받는다 더러워서.”





폭탄머리는 한심한 듯 두꺼운 입술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앨버트는 어제 자신이 만났던 여인에 대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의 뒷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폭소를 하며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그와 부딪혔다. 남자는 뒤를 한번 쳐다보더니 왜소한 체구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별거 아닌 듯 사과없이 뒤로 돌아 다시 대화에 끼었다.





“여기는 공사가 언제까지 계속되는거지?”
“글쎄. 한 10년 잡는 것 같던데. 지금 여기가 5라인 인데 옆에다 8개 더 세운다더라.”
“하청 사장 놈들, 10년 동안은 어데 안가고 여기서 빨데 꼽고 쭉쭉 빨아제끼겄네.”
“여기는 현장소장이 왕이여. 공사 조인할라고 업체 사장들이 밤마다 집 앞까지 돈다발 들고 찾아간다더라. 푼 돈 받아 처먹은 것만으로도 근교에 빌딩 몇 채 세웠을 껄?”
“아. 진짜 누가 나 딱 일년만 현장소장 시켜줬으면 좋겠다. 맨날 수금하러 다닐 텐데.”





폭탄머리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뒤 편 무리에서 다시 또 큰 폭소가 터지며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덩치 큰 남자는 또다시 과하게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앨버트와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뒤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불쾌감을 느껴 자리를 떴다.







**************







땅거미가 질 무렵 현장은 퇴근하는 행렬이 길게 늘어졌다. 사람들은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말없이 정문 보안대로 향했다. 아침에 찼던 각반은 안전화에서 삐져 나오거나 아에 없이 짝짝이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풀어 헤쳐진 안전 조끼와 무표정한 얼굴. 누구도 잘못 살지 않았지만 그런 현장에 모여 일을 하고 있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 거대한 인력의 무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거나 자식만큼은 자기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겠다는 또는 자식을 아에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새어나왔다. 누구 하나 그들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은 더 큰 외로움과 비참함을 느꼈다.





앨버트와 두 남자는 잔업에 걸려 사이트에 남았다. 그 잔업은 닥트 시공이었는데 본사에서 장비가 들어올 예정으로 미리 배전작업까지 마무리 되기를 통보했고 예상보다 일정이 앞당겨지는 바람에 어떻게 해서든 오늘까지 케이블 닥트가 완성되어야 했다. 아침 내내 구멍을 내고 드라이버를 박고 네모난 닥트를 설치하는 데 시간을 다 쏟아 부었다. 이제 그들이 설치한 닥트 위로 120미터가 되는 케이블을 우겨 넣어야 했는데 닥트 위치가 지랄맞아 풀링기를 사용하기 어려웠고 하는수 없이 사람의 힘으로 직접 케이블을 끝까지 당겨야 했다. 그들은 케이블을 당길 때마다 ‘으쌰’하고 소리를 내며 신호를 맞추었는데 흡사 그 상황이 어린 시절 줄다리기를 연상케 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어릴 때 줄다리기를 건성 건성 하는 바람에 지금 여기서 다시 어른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케이블이 목표지점의 반까지 왔을 때 작업자들은 온 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누군가는 왜 케이블을 이렇게 무식하게 묶음으로 이동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은 늘 그렇듯 빠른 일 처리를 원했고 그 빠른 일 처리 방식은 대게 ‘한번에 많이’ 였다. 그리고 높은 노동강도에 대한 몫은 오로지 작업자들에게 돌아갔다.







**************







‘커피 한 잔씩 하십쇼’





A사이트에 있던 근무자의 무전이었다. 현장 내 모든 음식료는 반입이 금지되었지만 야간에 거기다 커피까지 일일이 확인해 재제하지는 않았다. 앨버트는 작업자 15명의 커피를 가지러 30분을 걸어 A사이트에 도착했다. 그는 동료와 함께 종이 캐리어에 든 아이스 커피 4잔을 양손에 들고 다시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이미 커피를 오래 전에 샀는지 얼음 크기는 많이 줄어있었다. 커피를 받아 갈 때쯤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중간쯤 갔을 때 갑자기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둘은 급하게 몸을 숙이며 비를 피해 옆 건물 입구로 달렸다. 건물 입구는 닫혀 있었지만 다행히 비가 정직하게 수직으로 내려 입구 쪽에서는 비를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작업복은 비를 맞아 군데 군데 젖었고 옆에 있는 동료는 연신 욕을 하며 옷을 털었다. 앨버트는 입구에 서서 고개를 들어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를 막아주고 있는 간이 지붕 위로, 하얀 조명이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밝게 비추었다. 밤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비는 잘 보이지 않다 조명을 받자 마치 하얀 빛조각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수많은 빛조각들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그는 진실로 예술작품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좋아져 웃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동료는 미친 사람처럼 비를 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비가 좋았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빗물이 마치 머릿 속에 있는 아픈 기억들을 씻겨 주는 듯 했다.





[앨버트의 회상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