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19. 아르바이트 Ⅳ
19. 아르바이트 Ⅳ
[앨버트의 회상 시작]
굽굽한 습기와 퀴퀴한 비릿내가 온 공간을 가득 메워 숨이 막혔다. 그들은 1차 슬라이드로 납작하게 펴진 미끌거리는 오징어 머리를 잡아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집어 넣었다. 오징어 머리는 슬라이스 롤을 지나 눌리더니 길죽하게 잘려 구멍이 숭숭 뚫린 네모난 바구니에 담겨졌다. 구정물처럼 오징어 조각과 함께 흘러나오는 뿌연 점액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다시는 오징어 회를 안주로 시키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그들이 마지르에 있는 한 오징어 가공공장에서 일한 지 이제 한 달이 좀 넘어갔다. 이전에 다녔던 건설현장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고 생활비도 점점 바닥나기 시작했다. 동부 해안 근처의 글리(gli)라는 작은 해안 마을에 오징어 가공공장 직원 구인 광고를 보았고 면접도 필요 없이 도착 당일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셋은 각기 다른 작업에 투입되었는데 철판 컨베이어 벨트에 오징어를 한 놈씩 잡아 틀에 맞춰 빤듯하게 눕히는 해체작업과 두 조각으로 분리된 오징어를 잘게 써는 슬라이스 작업, 오징어 내장을 한 곳에 모아 폐기물처리장으로 가져가는 폐기물처리 작업 이렇게 세 곳이었다. 특히, 두꺼운 입술이 맡은 폐기물 처리 작업은 악취가 굉장히 심했는데 그는 코마개를 하고도 냄새가 너무 역해 마스크를 3개나 겹쳐 썼다. 쉬는 시간이면 바다가 보이는 뜰 근처에서 담배를 폈는데 그는 평소보다 담배를 심하게 펴대며 이건 도저히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며 방독면이 필요하다고 투덜거렸고 폭탄머리와 앨버트는 낄낄대며 웃었다.
작업이 끝나면 인근 숙소로 돌아와 낮에 작업한 오징어 몇 개를 가져와 독한 술과 함께 먹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 아래에서 고요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그 순간을 즐겼다. 멀리 달빛이 수면 위를 비추면 바닷물의 출렁거림이 보였고 환한 달빛이 수면과 맞닿은 곳에서는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앞날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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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구름에 가려 어두컴컴했다. 주말이라 작업자들은 출근하지 않았고 공장 주인이 숙소에서 쉬고 있는 셋을 불러 공장 청소를 요구했다. 주말이라 쉬지도 못하게 한다고 투덜댔지만 일당을 두 배로 주겠다는 말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공장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폐기물들을 주워 모았다. 하수구 덮개를 열자 구정물에 흐물거리는 오징어 파편들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왔다. 두꺼운 입술은 아무래도 자신들이 주인의 꾐에 속아 넘어간 것 같다고 했다. 공장을 가동하는 한 달 동안 청소를 제대로 한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충 보이는 곳만 마무리 하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폈다.
늦은 오후가 되자 밖에 나갔다 돌아온 주인이 공장을 둘러보았다. 청소를 대충 한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려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던 차 공장 주인은 의외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폐기물 처리 탱크 내부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처음에 이게 뭔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폐기물 처리 탱크라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장 주인은 셋의 표정을 읽었는지 자신을 따라오라며 폐기물처리장으로 향했다.
폐기물처리장은 여전히 썩은 내가 코 끝을 쑤셨다. 공장 주인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철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네모난 공간이 나왔고 밑까지 사다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주인은 엊그제 폐기물 처리 차를 불러 폐기물들을 담아 가서 안이 비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탱크 내부가 어두워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랜턴을 줄 테니 안에 들어가서 대충 물청소만 한번 해달라고 주인이 미안한 듯 웃었다. 두꺼운 입술이 탱크 입구로 고개를 내밀다가 ‘윽’하는 신음을 내며 얼굴을 내빼었다. 말이 좋아 폐기물 탱크지 이것은 배설물 탱크를 청소해달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꺼운 입술이 주인에게 작업이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도 몇 번 안에 가서 청소를 해봤다고 말했다. 또 마스크를 쓰고 가면 생각보다 그렇게 냄새가 많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앨버트는 이 정도 냄새면 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면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주인은 무슨 방독면이냐며 재밌는 친구라며 팔을 툭툭 쳤다. 그들이 계속 청소하기를 주저 하자 주인도 상황을 눈치 챈 것인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숫자를 세더니 셋에게 각각 돈을 건네주며 얼른 청소 끝내고 가서 쉬어라고 말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가 버렸다.
셋은 탱크 입구를 둘러 싸고 고민에 빠졌다. 탱크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고 안에 내용물이 있는지도 확인이 안 되었다. 앨버트가 혹시 안에 광인을 키우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 두꺼운 입술이 주인이 우리를 광인 먹잇감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것은 주인의 음모라고 말했다. 폭탄머리는 둘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담배를 피어댔다. 두꺼운 입술이 그냥 주인에게는 청소를 했다고 거짓말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탱크 내부가 깜깜해서 청소를 했는지 잘 보이지도 않을 터였고 이미 하루 일당은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이곳에서 한 두달은 더 일해야 될 터라 언젠가 주인은 거짓말 한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 생각되자 부담스러웠다. 폭탄머리가 그냥 주인이 말한대로 안에 후딱 들어가서 입구근처 벽에 대충 물만 뿌리고 가자고 했다. 그리고 셋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청소를 할 한 명을 정했는데 두꺼운 입술이 걸렸다.
공장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마스크를 세번 겹쳐 쓴 그는 네모난 구멍 속 조금만 사다리를 밟으며 자신의 몸이 조금씩 조금씩 변기통 속으로 빠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둘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방호스를 준비하고 건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꺼운 입술이 점점 검은 구멍 아래로 내려가더니 이내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 뒤 밑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검은 구멍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랜턴이 딸칵 켜지며 바닥에 다다른 두꺼운 입술이 보였다. 그는 아무것도 없다더니 천지가 오징어 구정물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둘은 킥킥 대고 웃다가 소방호스를 아래로 내려주었다. 앨버트가 안이 어느 정도되냐고 물었지만 대답 없이 소방호스가 점점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탱크 안은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은 컴컴한 동굴 같았다. 벽면에는 오징어 잔여물이 딱딱하게 굳은 코딱지처럼 붙어있었다. 도대체 공장주인은 여기를 왜 청소하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배설물을 담는 탱크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 일 텐데 그가 여길 청소한다고 이 악취가 쉬이 사라질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소방호스 밸브를 열자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랜턴으로 여기저기 밝혀 가며 물을 뿌려댔다. 어린 시절 화장실 청소도 많이 해봤지만 어른이 되서 배설물 탱크 안 까지 들어가게 될 줄 그도 몰랐을 것이다. 이 황당한 상황에 그는 쓰디쓴 한 숨을 지었다. 도대체 전생에 얼마나 잘못을 했기에 삶이 이렇게 고된 지경에 이를 수 있는지 자문했다. 냄새가 너무 독해 코가 이미 마비된 듯했고 탱크 안의 공기는 굉장히 무거웠다. 그는 계속해서 더러운 벽을 물로 씻겨냈다. 숨이 가빠졌고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 갔다.
밖에서는 두꺼운 입술이 내는 물 뿌리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살수음이 주기적으로 나는 것으로 보아 주인이 광인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 듯 했다. 처음에는 배설물 구덩이 처럼 느껴졌던 조그마한 입구도 자꾸 있으니 그냥 통로 처럼 느껴지는 듯 했다. 어쨌든 두꺼운 입술이 오늘 고생을 많이 했으니 그가 돌아오면 위로를 해주어야 겠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물 뿌리는 소리가 멈췄다. 청소가 대충 마무리 된 듯 했다. 앨버트가 청소가 끝났는지 소리쳐 물었다. 탱크 안은 조용했다. 폭탄머리가 안에서 오징어가 되 버린 것이냐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적의 시간이 몇 분 지나자 폭탄머리는 앨버트에게 소방호스를 당겨보라고 말했다. 앨버트는 소방호스를 감기 시작했다. 그들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소방호스는 빠르게 감겼고 곧 주둥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폭탄머리는 뭔가 결심한 듯 숨을 깊게 들이키고는 얼굴을 구덩이 속으로 집어 넣어 랜턴으로 이리저리 밝히기 시작했다. 그의 시야에는 오징어 구정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몸을 좀 더 집어 넣어 먼 곳을 비추자 멀리 오징어 구정물 안에 사람인지 오징어 무덤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닥에 붙어 있었다.
폭탄머리는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머리를 다시 올려 숨을 들이킨 뒤 그대로 사다리를 밟고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 탱크 안 속으로 깊숙이 뛰어갔다. 앨버트는 두꺼운 입술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당황했고 그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될 지 몰랐다. 폭탄머리를 따라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갈까 생각하다 만약 둘 다 잘못 되면 밖에서 구조요청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기했다.
안에서 뭔가 물체가 질질 끌려오는 듯 오징어 구정물이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나온 것은 두꺼운 입술을 끌고 있는 폭탄머리였다. 두꺼운 입술은 기절한 듯 몸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폭탄머리는 앨버트를 향해 소리치며 두꺼운 입술을 받으라고 말했다. 그는 몸을 깊숙히 구덩이 속으로 집어 넣어 두꺼운 입술의 상체를 두 손으로 잡았다. 밑에서 폭탄머리가 하체를 잡고 조금씩 밀어 올리자 두꺼운 입술이 지상으로 조금씩 조금씩 올라왔다. 앨버트는 젖먹던 힘을 쥐어 짜 두꺼운 입술을 끌어당겼고 그제서야 그가 완전히 구덩이 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둘은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앨버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지만 두꺼운 입술은 완전히 기절해 버린 듯 조금의 미동도 보이질 않았다. 앨버트는 그가 왜 기절해 버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인공 호흡을 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다 그를 깨우기 위해 사정없이 뺨을 갈겼다. 하지만 마치 죽은 사람처럼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던 그는 주인에게 구조요청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사무실로 뛰어갔다. 주인은 깜짝 놀라 응급신고를 했고 앨버트와 함께 폐기물처리장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아까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두꺼운 입술만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앨버트는 폭탄머리가 어디 갔을지 생각하다 아차 하고 구덩이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폭탄머리는 한 손으로 사다리를 붙잡고 축 늘어져 있었다. 앨버트는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폭탄머리를 들고는 주인에게 소리쳤다. 주인이 놀라며 달려와 폭탄머리를 받쳤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폭탄머리 다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폭탄머리가 구덩이를 빠져나오자 앨버트 역시 사다리를 집고 올라가려는 데 뭔가 핑 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버렸다. 주인은 앨버트에게 빨리 나오라며 소리쳤지만 그는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가야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시야는 두개 세개로 쪼개져 흐릿해져 갔다.
컴컴한 폐기물 탱크 속에서 그는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앨버트의 회상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