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_25. 연주
25. 연주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삼일 내내 비가 내렸다. 커르잘리 45번구역은 폐쇄되었고 인근지역 사람들은 광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는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당국에서는 주요 교통 지역마다 기갑부대를 배치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사건 당시 집계된 총 사망자 수는 민간인 1명을 포함해 모두 35명이었다. 사망자에는 초임 발령난 19세 젊은 헌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이프릴은 3일째 혼수상태에 빠졌다.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이었다. 오브라이언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에이프릴을 지켜 보았다. 슈프리머는 에이프릴을 보고는 분노에 사로잡혀 광인을 잡아 죽여버리겠다며 밖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럼에도 커르잘리 광장에 묻은 피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키르프 산 초입에서 야간 외곽경비를 서고 있는 마크가 말했다.
“뭐가?”
그의 옆에서 장갑로봇의 뚜껑을 열고 담배를 펴고 있는 부대장 한스가 그를 쳐다보았다.
“광인이 『피의 광기』에 접어들면 거의 매일 사망자가 발생해야 하는게 정상인데 말이죠. 벌써 4일째 접어 들고 있는데 사망자 소식이 없네요.”
“죽었는데 신고가 안된 모양이지.”
“보통은 사람을 떼로 죽여서 신고가 안될 리가 없을텐데 말이죠. 혹시 광인이 죽은거 아닐까요?”
“너 또 근무서기 싫어서 헛소리하는거냐?”
“아하하하... 아닙니다. 전 이렇게 조용하게 시간 때우는 거 좋아합니다.”
부대장 한스는 콧방귀를 뀌며 심드렁하게 장갑로봇에 머리를 기댔다. 비는 그치지 않고 어두운 숲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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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이 사라진 어두운 거리에서 남자는 비를 맞으며 추적추적 걸어다녔다. 그는 의식이 있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알지 못했다. 그의 시야에는 종잇장처럼 찢겨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필름 속에 잘못 들어간 장면처럼 짧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젊은 청년이 살고 싶어 피를 흘리며 기어다니는 모습도. 죽은 동료를 보며 울부짖는 남자도. 그의 시야에서 어른거렸다.
그는 방황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며 어두운 거리를 돌아다녔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흉측하게 찢겨진 얼굴. 빨갛게 충혈된 두 눈.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님을 알고 절망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먼 길을 건너와 버린 듯 했다.
모퉁이를 돌아선 어느 작은 가게의 쇼윈도에는 TV가 켜져있었다. 광고인 듯한 장면 속에는, 한 소년이 아빠로 보이는 남자의 목마를 타고 있었고, 옆에서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가 떨어질까봐 안절부절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는 문득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멀리 어디선가로부터 귀에 익숙한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쏟아지는 빗물을 타고 흘러와 그의 몸을 감쌌다. 그는 그 음악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음악이 흐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음악은 빗물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기를 재우는 엄마에게도, 손님을 태우다 비를 맞는 택시기사에게도, 늦은 사무실에 홀로 불을 켜놓고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쓰레기를 버리고 밖에서 담배를 태우던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캄캄한 밤에 잠들지 못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군인에게도, 병원에서 잠들어있는 에이프릴과 오브라이언에게도, 화가 나 술을 마시며 휘청대는 슈프리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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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까맣게 어두워질 무렵, 헌터는 고븐 힐에서 비가 내리는 슈트라우스 가를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슈트라우스가를 부분 부분 밝히는 빛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담배에 붙은 불은 빨간 불빛을 내며, 조금씩 하얀 표면을 까맣게 태웠다. 그는 뿌연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그의 눈에 비친 슈트라우스 가의 불빛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헌터가 기다리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어떤 조명도 없었지만 시내에서 퍼져나오는 빛이 환하게 둘을 밝혔다. 앨버트는 이미 그가 구면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자신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남자는 우두커니 헌터를 바라보았다.
“...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앨버트가 질문했다. 헌터는 말이 없었다. 어떤 말로도 청년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헌터는 안타까움에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어쩌면 이 가엾은 청년은 이미 벌어질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지금껏 그 힘들었던 순간들이란, 어떠한 성공이나 개선도 기약할 수 없는, 결국은 이렇게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리 거부하려해도,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결국 이렇게 되고 말 것이었다는 것을.
청년은 먹먹함이 밀려왔다. 서럽도록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먹먹함이 밀려왔다.
「 트럼펫. 한 번 불어봐도 돼요? 」
그의 물음에 헌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트럼펫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헌터는 앨버트에게 트럼펫을 던졌다.
트럼펫 소리가 빗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 앞에 낯익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공병을 입가에 대고 트럼펫 부는 흉내를 내는 동생의 모습도
축 처진 어깨를 치며 익살스럽게 웃어대는 두꺼운 입술과 폭탄머리도
조그만 방에 업드려 글을 읽고 있는 아이를 보며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도
이완은 트럼펫을 불다 그의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고븐힐에서 내려다 본 슈트라우스가를 가리키며, 이보다 더 큰 무대는 없을 것이라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앨버트는 그의 웃음에 말없이 미소지었다.
그는 지금껏 쌓여왔던, 그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르던, 그를 옳아매고 괴롭혔던, 그 답답함이, 불에 타 재가 되어 바람에 휘날리듯 그의 마음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쓸쓸하게 녹슬어 버린 행복한 왕자처럼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행복했다. 섭섭했지만 후련하고, 서늘했지만 가슴 뜨거운 그런 감정에 그는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총소리]
제 2 화 『 고븐힐의 연주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