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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28. 골든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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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골든 타워



공항을 벗어난 지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비행기는 100km 상공에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깜깜한 실내에서는 엔진소리도 들리고, 바람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지만 헌터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비상등 가까이에는 한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은 안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았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길 수 있을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겉표지에는 황금색 글씨로 『cardo』라고 쓰여있었는데, 얼핏 봐서는 소설 같기도 했고 철학 서적 같기도 했다.



“어두운 데서 읽으면 눈 나빠져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반대편에서 방금 잠에서 깬 듯한 남자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흘러나오는 앞머리를 올려 머리띠로 고정했다. 그는 자리가 불편해 더 이상 잠을 깊게 들 수 없었는지 계속 두 팔을 이리저리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아, 같은 지부라 금방 갈 줄 알았는데 아직인가. ”



머리띠를 한 남자는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셔틀 후단에 있는 간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문이 닫혔지만 물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온 남자는 자신의 자리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아 창문덮개를 열었다. 밖은 캄캄한 밤이었는데 목적지가 가까워진 듯 육지에 있는 불빛들이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뚜렷이 보였다. 거대한 어둠을 듬성듬성 밝히고 있는 도시의 불빛을 보고 잇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져, 도시 전역이 광인들로 덮였다는 본부의 말이 좀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도를 낮추기 위해 기체가 조금씩 흔들리자 사람들은 하나 둘씩 깨어났다. 이제 창 밖의 도시는 커다란 건물의 형체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여러 지역들 중에서도 유독 환하게 빛나는 곳이 있었는데 언뜻 봐서는 지역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곳이 광인들과 한창 싸우고 있는 전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좀 더 육지로 가까이 내려가자 그것은 화재가 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역, 모든 건물이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24시간 멈추지 않는 향락의 도시 「골든 타워」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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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끝에서 끝으로 길게 이어져 마치 오로라를 연상케 했다. 오브라이언은 호텔 내부의 화려한 장식에 넋이 나가 머리와 다리가 따로 놀았고, 그 때문에 지나가던 여행객과 몇 차례 부딪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독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되면 위험하다는 불만이 제기되었고, 본부는 이를 받아 들여 도착 당일, 하루 일정을 골든타워에서 묶을 수 있도록 시에 요청했는데, 의외로 시장은 흔쾌히 고급 호텔을 비워주며 헌터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오비. 너 그러다 목 부러지겠다.”



목을 뒤로 젖혀 건물 내부를 구경하고 있는 오브라이언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슈프리머가 말했다. 그는 투박한 전투복장을 입은 오브라이언과 달리, 하루 진탕 놀다 갈 것이라는 듯, 야자수가 그려진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안 춥냐?”
“너 여기 첨이지? 자식 따라와라. 이 형님이 파라다이스를 보여줄게.”
“에이프릴은?”
“피곤하댄다.”
“피곤한 여자구만\~”



오브라이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장서 가는 슈프리머를 뒤따라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골든 타워에서도 가장 핫 한 ‘그랜드 카지노’였는데, 광인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이 많았다. 호텔 로비는 카지노와 연결되 있었는데 멀리 안내데스크가 보였고, 그 옆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넷이 카지노장으로 가는 입구를 막고 있었다.



슈프리머가 안내데스크에 객실호수를 대자 ‘Approved’라는 알림과 함께, 목걸이 형태의 출입증이 발급되었다. 둘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지나쳐 어두운 복도로 들어갔는데, 진짜인지 모조품인 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정중앙에 루이 14세의 전신상이 걸려 있었고, 바로 앞 네모난 유리상자에는 각 모서리에서부터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는, 푸른색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양 옆에는 긴 통로가 있었는데, 벽면을 따라 주황색 조명과 함께 그림들이 전시되 있었다. 오른쪽 통로를 따라 끝까지 걸어가자, 아름다운 여인이 엘리베이터와 함께 나타났는데, 여인은 매혹적인 미소로 둘에게 인사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넓고 조명이 약간 어두웠는데, 신기한 것은 안에 버튼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을 올라가더니 체감상 5층 정도의 높이에 이르자, 속도가 천천히 줄더니 도착음과 함께 멈추었다. 문이 열리자 또다시 어두운 복도가 나왔고, 복도 끝에는 여자 두명이 인사하며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는데 역시나 아름다웠다. 여자들이 출입문을 열자 눈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이 너무 밝아 둘은 눈살을 찌푸렸는데, 눈이 차츰 빛에 적응하자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대형 축구장 넓이의 어마어마하게 큰 실내 카지노장 이었다.



**************



120층 규모의 호텔은 각 1층마다 투숙객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는 물, 커피, 탄산수 등의 비알코올 음료와 맥주, 와인, 위스키, 브랜디와 같은 술이 종류별로 있었다. 이외에도 바케트빵이나 샌드위치, 치즈쿠키와 같은 다과가 있었고 사람들은 음식을 들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고 마셨다.



그가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놀기 좋은 저녁 8시였고, 대부분 투숙객들은 카지노장으로 달려간 뒤였다. 카페는 한산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긴 코트를 입은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카페를 어슬렁 거렸다. 스낵바를 발견하고는 딸기잼과 치즈가 들어있는 하얀 샌드위치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맛을 보았다. 몇 차례 오물거리던 입이 멈추자 맛이 괜찮았던지 몇 조각을 더 집어 쿠키와 함께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주류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커피머신기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자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기계에서 커피가 쏟아져 나왔다.



커피가 나오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을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 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커피가 잔을 반쯤 채우자 기계는 완료됨을 알렸고 남자는 잔을 들어 뒤를 돌았다. 그의 뒤에는 황갈색 단발머리 여인이 그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쳐다보고 있았다. 그는 여자를 알고 있었다. 본부에서 오가며 몇 번 마주치고는 했는데, 한번도 말을 주고 받은 적은 없었다. 그는 여인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옆으로 살짝 비켜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이동시켜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는 당황한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녀를 향해 무슨 일일까 궁금한 표정으로 미소지었고, 그녀는 아무 말없이 그를 계속 쳐다보았다. 짧은 정적이 지속되자 남자는 여자의 장난이 어떤 친근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미소를 거두고 들고 있던 커피잔에서 커피를 한 모금마시며 여자와 똑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돌발행동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재미없다는 듯 ‘비켜요’라고 말하며 남자를 옆으로 밀쳤다. 남자는 갑작스런 밀침에 당황했지만 이내 소리없이 웃고는 여자를 뒤로하고 스낵바 밖으로 걸어나갔다. 여자는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5층 높이의 카지노장 입구에서 나온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카지노장의 전경을 감상했는데, 그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에 넋을 놓고 말았다. 게임장으로 추정되는 초록색 테이블이 카지노장 전역에 넓게 퍼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테이블을 중심으로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검은 스타킹을 입은 바니 걸들이 샴페인 잔이 든 은빛 쟁반을 들고 돌아다녔다. 카지노장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는데 천장으로부터 한 시간 단위로 음악과 함께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심장을 두드리는 리듬 짙은 클럽 음악이 들려왔는데 3층 정도의 높이에 실내수영장이 있었고 그 옆에서 DJ가 장비들을 만지며 몸을 들썩였다. 카지노장의 끝에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슬롯머신 기기들이 있었는데 사람이 많진 않았다.



슈프리머와 오브라이언이 1층에 도착하자 체크무늬 스티킹을 입은 금발의 바니걸이 그들을 살갑게 맞이했다. 둘은 당황했지만 기분이 좋았고, 그녀는 자신을 담당 가이드라고 소개하며 그들이 원한다면 카지노장을 나갈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 말했다. 그들은 어리숙하게 머뭇거리다, 수줍게 ‘원한다’ 고 말하자 여자는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그들을 데리고 카지노장을 돌아다니며 게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는데, 그들은 그녀의 미소에 정신이 팔려 제대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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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바카라에 들어서자 그녀가 한번 가볍게 베팅해 볼 것을 권했고, 그들은 교환소로 가 베팅할 금액을 칩으로 바꿔왔는데 각자가 들고온 통에 칩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자, 여자는 이 어리숙한 남자 둘이 너무 재밌다는 듯 깔깔깔 웃었다. 둘은 초반부터 상남자의 베팅을 보여주겠다며 앞다투어 큰 금액을 베팅하려 했고, 너무 금액이 과하자 가이드가 말리느라 안절부절 못했다. 오브라이언은 특히 ‘바카라’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베팅을 할때마다 주문처럼 ‘바카라’를 외쳐 댔는데 문제는 그가 블랙잭이나 룰렛과 같은 다른 게임을 할 때도 그랬다는 것이다. 슈프리머는 그의 친구처럼 무식하게 바카라를 외쳐대지는 않았지만 그가 게임에서 간간히 승리할 때면 승리의 여신에게 바친다며 100달러짜리 칩에 뽀뽀를 하고는 그것을 가이드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 칩을 받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이미 전판에 세 배가 넘는 판돈을 잃어 손실에 대해 무감각해진 뒤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칩을 사이버머니 쯤으로 생각하며 마구 잃어가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가이드는 그 속도에 놀라 점점 겁을 내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성을 잃고 다음 게임을 향해 스파르타의 전사들처럼 기합을 넣으며 전진하자 잠시 본부에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는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세 시간이 넘도록 카지노장을 돌아다니며 대부분의 게임에 참여했는데 거진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칩통은 텅텅 비어있었고 아름답던 바니걸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칩이 최소 베팅금액에도 미치지 못해 더 이상 테이블 게임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가진 돈을 많이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실의에 빠져 슬롯머신기에 앉아 전자 카드를 꼽고 버튼을 눌러댔는데 그마저도 잔고가 점점 0에 가까워지자 처음 입장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밤 10시가 되자 패잔병이 되어 카지노장을 나갔는데 왠지 털이 바싹 깎여 앙상해진 양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