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31. 임무 Ⅱ
31. 임무 Ⅱ
에이프릴이 속한 1소대가 미정화구역 4A 지역을 수색한 지도 세 시간이 지났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소대장을 맡은 파머가 솔선수범하겠다며 직접 정찰에 나서는 바람에, 소대는 20분에 한 번꼴로 멈춰 서야 했다. 심할 때는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다시 정지 신호가 떨어져 소대원들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만들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자신이 소대를 훌륭히 이끌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 바보 같은 소대장에게 차마 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기다리십쇼. 이 앞은 길이 세 방향으로 갈라져 있어서 어느 쪽에서 광인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최적의 루트를 찾기 위해 제가 잠시 정찰하고 오겠습니다.”
이번에는 세 갈래 길을 전부 돌아보고 올 작정인지, 파머는 풀린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전방의 엄폐물을 찾아 헐레벌떡 뛰어다녔다.
“도대체가…”
길 한쪽 건물 외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담배를 꺼내며 슈프리머가 말했다.
“광인이 총을 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엄폐물을 찾아다니는 거야. 뇌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놔둬라. 오늘 처음 야전에 나왔잖냐. 잘 보이고 싶은가 보지 뭐.”
오브라이언이 방호복 상단의 단추를 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오, 진짜. 저 주먹, 뒤통수를 한 대 갈겨버리고 싶네.”
주변에 있던 다른 소대원들도 슈프리머의 말에 공감하는지 낄낄대며 웃었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에이프릴이 불과 5미터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파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봐, 소대장.”
파머가 뒤돌아 에이프릴을 보더니 놀란 눈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에이프릴. 거기 서 있으면 위험해요. 이리 오세요.”
파머가 네 손가락을 모아 자기 뒤로 까딱까딱 손짓했다. 에이프릴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그의 뒤로 걸어갔다.
“혼자 소대를 다 끌고 다니기엔 힘들 것 같은데. 분임조로 움직이는 게 어때?”
에이프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 파머는 분임조라는 개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몰라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에이프릴은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덧붙였다.
“나눠서 다니자는 뜻이야.”
그제야 뜻을 이해한 파머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이제 곧 분임조로 나눌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마침 길도 세 갈래니까, 나랑 저 빠박이, 그리고 저 꺽다리 셋이 저쪽 길로 가볼게.”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쇼. 무슨 일 생기면 무전으로 언제든 저 파머를 불러주십시오!”
“그러지.”
에이프릴은 웃으며 슈프리머에게 다가갔다.
“뭐래? 길 잃어버렸대?”
“잃어버릴 길이나 알았겠냐?”
에이프릴은 슈프리머 옆에 놓인 배낭을 어깨에 둘러메고 오른쪽 길로 나섰다. 슈프리머와 오브라이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
에이프릴이 선택한 길 끝에는 커다란 백화점 건물이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넓은 홀 내부가 천장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층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홀 안을 내려다보며 오르내릴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홀에서 열리는 대형 이벤트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구조인 듯했다. 매장 안은 이미 오래전에 물건을 철수한 것인지, 아니면 도난당한 것인지, 널브러진 마네킹과 비품만 남아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간혹 옷걸이에 옷이 몇 벌 걸려 있었지만, 공짜로 준다 해도 가져가고 싶지 않을 것들뿐이었다.

에이프릴은 1층부터 매장을 훑어보며 광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건물 밖보다 건물 안이 훨씬 으스스했다. 어느 층에선가 그들의 발소리를 듣고 우르르 광인들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백화점 식당가가 왜 꼭대기 층에 있는지 아냐?”
슈프리머가 으스스한 적막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예전에 백화점 사장한테 들은 얘긴데 말이야, 1층에 음식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밥만 먹고 그냥 간다는 거야. 그러면 장사가 안 되잖아? 근데 꼭대기 층에 식당가를 만들어 놓으면 배고픈 사람들이 일단 올라가서 밥을 먹지. 배가 부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천천히 내려오면서 구경하다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하나씩 사게 된단 말씀이지. 이런 매장 배치도 다 계획된 거라고.”
“아닌데? 그럼 지하에 있는 식당가는 뭐야?”
오브라이언의 반문에 슈프리머는 갑자기 말문이 막힌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너 같은 가난뱅이들도 백화점 맛 좀 보라고 만들어 놓은 거야.”
“아, 그렇게 깊은 뜻이.”
“너 아직도 매장 지나칠 때마다 직원들이랑 눈 못 마주치지? 이 가난뱅이 자식이 살 돈도 없는 주제에 어디서 가격을 물어봐? 혼날까 봐 벌벌 떨고 말이야. 그러니까 옷가게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맨날 읽지도 않는 책 구경한답시고 서점 코너에서 마음의 안식이나 찾는 거지. 맞아, 안 맞아? 앙?”
“네 이야기냐?”
“아니, 네 이야기.”
“아닌데?”
“그래? 그럼 아닌가 보지 뭐.”

에이프릴이 둘을 무시한 채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 다른 층과 달리 옆 건물로 넘어가는 긴 통로가 보였다. 통로는 유리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백화점 바깥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위치가 꽤 높아 동네 곳곳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 넓은 바깥에 광인 한둘쯤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법도 했지만, 광합성을 싫어하기라도 하는 듯 바깥엔 그저 쨍쨍한 햇볕뿐이었다. 세 사람이 통로를 지나 반대편 건물에 도착하자, 그곳은 창문이 없는 전형적인 백화점 구조였는지 사방이 어두컴컴해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젠장. 소름 돋네.”
셋은 곧바로 전투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야간투시경을 켰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공간이 초록빛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었고, 숨소리조차 조용해졌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5층 영유아용 매장이었다. 사람들이 아기용품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몇몇 브랜드 매장엔 재고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현금출납기만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어딘가 급하게 쓸려 나간 듯한 흔적이 바닥에 남아 있었고, 그 자취를 따라가자 에스컬레이터가 나왔다. 셋은 조용히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한 층씩 내려가며 수색했다. 1층 화장품·잡화 매장에 다다랐을 때까지도 이상하게 광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건물엔 아무것도 없는 건가?’
오브라이언의 말이 마스크 화면 상단에 떠올랐다.
‘잠시만.’
에이프릴이 눈길을 돌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향했다. 그녀가 천천히 발판을 밟아 내려가 지하를 둘러보자, 다른 층에서는 보지 못했던 마네킹 같은 ‘하얀 물체’들이 여러 개 눈에 들어왔다. 녹색 야간투시경 화면으로는 그것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마스크에 적외선 모드를 추가했다. 열이 있는 물체를 감지하는 기능으로, 뜨거울수록 붉게 표시되는 모드였다. 그러자 하얗게 보이던 것들이 갑자기 불그스름한 빛으로 변했다.
‘여기다!’
그녀가 찾아낸 지하 1층에는 광인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가수면 상태로 선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지하 매장을 가득 메울 정도의 숫자였다.
‘생각보다 많은데? 이걸 어떻게 잡지?’
에이프릴은 고민했다. 임무 첫날이라 가벼운 정찰 정도로 생각한 탓에, 세텔라이트와 개인 화기를 아무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다. 하필 이런 상황에서 지하에 무더기로 숨어 있는 광인들을 발견할 줄이야. 전투 포지션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광인들이 올라올 수 있는 통로는 상행과 하행 에스컬레이터 두 곳뿐이었다. 두 곳을 틀어막고 싸운다 해도 시체가 쌓이면 광인들이 그 위를 밟고 올라올 게 분명했다.
‘가스관. 아직 살아 있을까?’
에이프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슈프리머가 말했다.
‘가스폭발? 너무 위험하잖아.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가스관은 어떻게 하려고? 누가 내려가서 잘라야 하잖아?’
에이프릴과 오브라이언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뭐? 나? 하… 장난해?’
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새기들이 진짜…’
‘엄호해 줄게.’
‘됐어. 엄호는 무슨. 어디서 엄호할 건데? 장난치냐?’
‘내 방호복 너 입어라.’
‘안 입어, 임마. 나 엑스라지야.’
슈프리머는 허탈한 듯 쭈그려 앉아 머리를 박박 긁었다. 이렇게 위험한 순간마다 아무 망설임 없이 자기부터 떠올리는 이 둘이 어이가 없었다.
‘안 되겠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 아냐. 쿠폰 등록이라도 해놔야지.’
슈프리머가 쿠폰 등록 창을 띄워 『1번 가스관 작업(별 다섯 개)』라고 적어 넣었다.
‘별 다섯 개는 뭐냐?’
‘존! 나! 위험했다는 거지!’
‘크크. 그래, 이제 됐네. 가봐.’
‘아이씨, 잠깐만. 생각 좀 하자…’
슈프리머는 상행과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보며 각을 재다가, 한참 고민한 끝에 하행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한 걸음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이프릴과 오브라이언은 그 뒤에서 에스컬레이터 중간쯤에 대기했다.
슈프리머는 가수면 상태의 광인들 사이를 조심조심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광인들은 서 있었지만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고, 서로 부딪칠 때마다 쉭쉭 위협적인 바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거세질 때마다 슈프리머의 심장은 점점 오그라들었다.
간신히 에스컬레이터 앞 무리 사이를 빠져나온 그는 음식점 구역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 코너를 지나 샤브샤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조리장 안에는 광인이 없었다. 그는 서둘러 가스관을 찾았다.
‘찾았나?’
‘뭐야. 죄다 인덕션인데?’
‘아. 그렇겠네.’
‘…그렇겠네라니!’
에이프릴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말하자, 슈프리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으로 가봐.’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
‘…’
‘아오…’
슈프리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시 서서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광인들은 가수면 상태로 헐떡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움직임이 많을수록 자극될 가능성도 커졌다. 그는 가스관을 쓸 만한 장소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골라냈다.
‘중국집은 어때?’
‘중국집?’
‘불맛이 좋아야 하니까.’
‘…어디에 있는데?’
에이프릴이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에스컬레이터 옆 기둥에 붙은 안내판을 확인했다. 시선이 가게 이름을 스칠 때마다 정보가 마스크 화면에 떠올랐다.
‘왼쪽 복도 끝.’
‘간다.’
슈프리머는 마치 다시 잠수하러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몸을 숙여 부스 밖으로 나왔다. 모퉁이를 돌아 왼쪽 복도로 향하는 길목에 광인 하나가 비틀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광인은 복도 입구를 지나 다른 방향으로 비틀거리며 멀어졌다.
‘후…’
그는 재빨리 입구를 지나 복도 끝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다음 구역으로 연결되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그 옆에 찾던 중국집이 보였다. 다만—
‘젠장. 입구가 막혔다!’
식당 출입문은 여닫이문이었는데, 바로 앞에 광인 하나가 버티고 서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지?’
‘죽여.’
‘뭐!?’
주변을 살피니 다른 광인들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 슈프리머는 한숨을 내쉬더니 장갑 낀 손으로 오른쪽 발목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천천히 광인에게 다가간 그는 재빨리 뒤로 돌아가 왼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광인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발버둥쳤고, 그는 망설임 없이 칼을 정수리에 꽂아 넣었다. 허우적거리던 몸이 잠시 뒤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후…’
‘성공했나?’
‘예예…’
‘얼른 들어가.’
‘보채지 좀 마라, 자식아.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
슈프리머는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곧장 조리실로 향했다. 다행히 예상대로 그곳엔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버너마다 연결된 가스관 중 하나를 나이프로 잘라냈다.
‘…’
하지만 잘린 가스관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새어 나오는 가스 냄새도 없었다.
‘잘랐나?’
‘어, 근데… 가스가 없네.’
‘이런.’
에이프릴과 오브라이언은 아쉬운 듯 방향을 틀어 1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어쩌면 입구를 틀어막고 정면으로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보급받은 탄환으로 광인의 수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지하에 있는 것들이 전부라는 보장도 없었다.
“우리 셋이선 무리다. 본대에 지원 요청하자.”
오브라이언의 말에 에이프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1층으로 올라와 파머에게 무전을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잡음뿐이었다. 잠시 후 오브라이언이 다가와 지원이 오는지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오브라이언이 옆 소파에 걸터앉았다.
“광인을 유인하는 건 어때?”
“어디로?”
“꼭대기 층으로. 적어도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니까 좀 낫겠지.”
“안 돼. 고립되면 탈출구가 없어.”
“아오.”
오브라이언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들!”
그때 슈프리머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눈을 부라리고 다가왔다.
“엄호를 할 거면 끝까지 할 것이지, 여기서 노가리를 까?”
“그건 뭐냐?”
슈프리머는 양손에 들고 있던 네모난 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름이지!”
***
방호복을 벗은 채 에스컬레이터 계단에 걸터앉은 에이프릴은 말없이 한 손에 든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른손 엄지가 울퉁불퉁한 탄창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 그녀는 방금 세운 작전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기름 두 통으로 다 태울 수 있을 만한 숫자가 아냐.”
“적어도 올라오는 놈들 중 절반은 타겠지.”
슈프리머는 자신이 가져온 기름통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듯 애써 희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에이프릴도 그 기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잘만 쓰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에이프릴이 결심한 듯 말했다.
“기름 두 통으로 모두 적실 수 있게 광인들을 한곳에 모으는 거야.”
“어떻게?”
에이프릴은 처음 들어왔던 이벤트 홀을 가리켰다.
“저기 난간 밑까지 광인들을 몰아. 그리고 2층 난간에선 기름을 부을 준비를 하는 거야. 광인들이 2층으로 올라오려고 벽을 타고 뭉치기 시작하면, 그 위에 기름을 붓는 거지.”
“광인은 어떻게 몰 건데?”
“이번엔 내가 할게.”
“야, 안 돼. 너무 위험하잖아. 광인들이 얼마나 빠른데. 거리도 멀고. 그리고 몰았다 치자, 너는 어떻게 빠져나올 건데?”
“이걸 미리 달아둘 거야.”
에이프릴이 뒤쪽 주머니에서 로프총을 꺼냈다.
“내가 이걸 붙잡고 2층 난간까지 올라가면, 그때 바로 기름을 부어.”
오브라이언과 슈프리머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진짜 할 수 있겠어? 중간에 고립되기라도 하면 구하러 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오브라이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럴 일 없어. 무조건 한 번에 끝낸다.”
그녀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망설임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였다. 두 남자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쿠폰 리스트가 추가되었습니다. 2번 광인몰이(별 여섯 개)』
쿠폰 알림창이 떠오르자 에이프릴이 황당하다는 듯 슈프리머를 쳐다봤다.
“별 하나 더 줬다.”
에이프릴은 코웃음을 쳤다.
***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에이프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다리를 풀고 목을 한 번 돌린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는 건 의미 없다고 판단한 듯 조심스럽게 에스컬레이터 중간까지 내려갔다. 리볼버 권총을 들어 올리자 총구 끝에 겨눠진 광인이 움찔했다.
[총소리]
첫 발이 등을 보이고 있던 광인의 뒤통수를 그대로 꿰뚫었다. 광인이 풀썩 쓰러지자 주변의 광인들이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총소리] [총소리]
에이프릴은 계속해서 광인들의 머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하나둘 쓰러지는 모습을 본 광인들은 그제야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올라오는 경로는 제각각이었지만, 광인들은 기묘할 만큼 단순하게 그녀가 있는 곳만 향해 몰려왔다. 에이프릴은 뒷걸음질치며 계속 총을 쏘았다.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광인들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했다. 광인들은 그 위를 밟고 기어올라와 그녀를 향해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에이프릴은 계속 뒤로 물러서며 총을 쐈다. 어느새 에스컬레이터 끝에 다다랐다. 그녀의 총에 맞고 쓰러진 광인들은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밑에서 올라오던 광인들은 그 시체에 부딪혀 함께 나뒹굴었다.
그 순간이었다. 에이프릴의 뒤쪽에서 괴성을 지르며 광인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총을 겨누려 했지만 타이밍을 놓쳐 뒤로 넘어졌다. 광인은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버둥댔다. 에이프릴은 그의 팔을 붙잡고 힘겨루기를 벌이다 가까스로 밀쳐내고 머리에 총을 쐈다. 주위를 둘러보니 총소리를 듣고 1층 매장 곳곳에서 다른 광인들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한 그녀는 몰려오는 것들을 향해 몇 발 더 쏜 뒤 2층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뛰었다. 광인들은 그대로 그녀를 뒤쫓기 시작했다.
이벤트 홀이 있는 반대편 건물로 넘어가려면 5층 연결 통로를 이용해야 했다. 에이프릴은 광인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따라붙도록 속도를 조절하며 한 층씩 올라갔다. 빠르게 근접해 오는 놈들은 어김없이 그녀의 총알에 머리가 뚫렸다. 예상대로 지하 1층뿐 아니라 다른 층에서도 숨어 있던 광인들이 총성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곧장 5층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올랐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5층 쪽에서 광인들이 그녀를 향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연결 통로를 지나지 않고서는 옆 건물로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 저 무리를 뚫고 강행 돌파할 것인가. 하지만 아래로 밀려오는 숫자를 보아선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그녀는 방향을 틀어 4층 매장 쪽 비상구로 향했다. 사방에서 광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나타났지만, 에이프릴은 침착하게 한 발씩 쏘며 길을 열었다. 가까운 비상구에 도착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제길.’
그녀는 재빨리 주위를 훑으며 다른 비상구를 찾았다. 그 사이 광인의 수는 계속 불어났다. 놈들은 모두 피눈물을 흘린 채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야간모드 상태에선 사물을 정확히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녀는 다음 비상구를 향해 뛰었지만, 그곳 역시 잠겨 있었다. 달려드는 광인을 향해 다시 총을 겨눴으나, 마지막 한 발이 나간 뒤엔 더 이상 장전할 탄환이 없었다. 빈 약실만 헛돌았다. 그녀는 빈 총을 던져버리고 마지막 비상구를 향해 뛰었다. 그 순간, 계획을 너무 쉽게 본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대로 광인들에게 붙잡혀 찢겨 죽는 걸까.
그녀가 비상구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광인 하나가 몸을 날려 그녀에게 덮쳐들었다.
***
건너편 건물에서 마지막 총성이 들린 뒤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2층 난간에 기대 기름통을 들고 있던 두 남자의 표정은 점점 초조해졌다. 계획한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 이제쯤이면 5층 연결 통로를 통해 에이프릴이 광인들을 몰고 나타나야 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슈프리머가 결국 폭발했다.
“젠장. 갔다 올게.”
“잠깐… 후우…”
“이미 도착했어야 하잖아!”
오브라이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두 남자가 총기를 챙겨 3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달려가는 순간이었다. 쾅, 하고 문짝 뜯기는 소리가 울리더니 5층 연결 복도에서 에이프릴의 모습이 나타났다.
“에이프릴!!!”
두 남자가 거의 동시에 그녀를 불렀다.
“준비해!!!”
에이프릴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내려 1층 이벤트 홀로 달렸다. 그녀의 뒤로 엄청난 수의 광인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며 뒤쫓았다.
“젠장! 너무 많은 거 아냐?!!”
“얼른 가자!”
슈프리머와 오브라이언은 방향을 틀어 기름통을 들고 난간 아래에 몸을 낮췄다. 2층에서 내려오는 광인들은 다행히 그들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1층 이벤트 홀로 뛰어내려갔다. 뒤늦게 몰려든 놈들은 1층을 가로질러 달리는 에이프릴을 향해 5층에서 그대로 몸을 던졌다. 하나둘 바닥에 처박히며 머리가 터졌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에이프릴이 이벤트 홀 구석에 도착하자 미리 설치해 둔 로프총을 움켜잡았다. 스위치를 켜자 줄이 재빠르게 감기며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광인들은 올라가는 그녀를 붙잡으려 벽에 몸을 기대고 미친 듯이 손을 뻗었다.
“기름!”
두 남자는 에이프릴 아래로 몰려든 광인들을 향해 기름을 퍼부었다. 놈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기름을 뒤집어쓰고 괴성을 질렀다. 수많은 광인이 그녀를 붙잡으려 서로의 몸을 밟고 올라섰지만, 기름에 미끄러져 아래로 고꾸라졌다.
“에이프릴!”
슈프리머가 기름을 다 부었다는 뜻으로 외쳤다. 에이프릴은 주머니에서 은빛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뚜껑이 열리자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그 불꽃 너머로 괴성을 지르는 광인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라이터를 아래로 던졌다.
[화르륵]
작은 불꽃이 기름에 닿는 순간 거대한 화염이 순식간에 치솟았고, 광인들은 한꺼번에 불길 속에 휩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