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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34.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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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일상



“스물일곱!”



큰 키에 우람한 체격을 한 검은 피부의 남자가 은빛 아연으로 도금된 무쇠 방망이를 들고는 괴음을 지르며 다가오는 광인의 머리를 맞추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남자들은 머리가 터져 나가는 모습에 환호하며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광인이었지만, 남자들 앞에 허무하게 쓰러져 버리는 것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라스트!”



허만은 광인을 향해 달려가더니 광인의 머리를 잡고 뜀틀 넘듯 넘어 그의 뒤편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 광인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서른!”



그를 보고 있던 남자들은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허만은 방망이를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며 빨갛게 묻은 피를 털어냈다.



“이봐, 맥주 하나 줘 봐!”



멀리서 보고 있던 남자가 아이스박스를 열더니 병맥주 하나를 꺼내 허만에게 던졌다.



“역시 열심히 일한 다음에 먹는 맥주가 최고야!”



허만은 맥주를 따 시원하게 마셨다. 그때 허만의 뒷주머니에 있던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허만! 무르만스크에 왔다고! 나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이 의리 없는 녀석!”
“이봐,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오늘 저녁 어때?”
“좋지!”



허만은 전화기를 끊고는 한쪽 구석에 앉아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어오른 남자를 보며 말했다.



“이봐! 소대장! 오늘 나 외박이야! 찾지 말라고!”



허만은 그를 남겨 둔 채 남자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다.



**************



뿌연 담배 연기가 자욱한 지하 클럽에는 옷을 야하게 입은 여자 바텐더들이 바쁘게 오가며 술을 나르고 있었다. 허만 일당은 클럽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가는 여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여자가 그들에게 메뉴판을 들고 다가와 주문할 것인지 묻자 허만은 여자의 엉덩이를 콱 움켜쥐며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여자는 깜짝 놀라 주문받는 것도 잊은 채 허만을 뿌리치고 도망가 버렸고, 남자들은 그걸 보며 재밌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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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



멀리서 그들을 본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골든타워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건달, 베스였다.



“이거 안 본 사이 몸이 더 커졌는걸? 이젠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구만.”
“넌 못 본 사이 더 탐욕스러운 돼지가 되었군.”
“하하하하, 독설하고는.”



베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광인 잡이는 할 만한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기에 뭔가 좀 있나 싶어 왔더니, 이건 뭐 식은 죽 먹기가 따로 없군. 이제 보니 북부 놈들 하나같이 다 약골이었던가 보지.”



허만이 비아냥거리자 그의 무리들이 따라 웃었다.



“허만, 자네 다른 일도 한번 해보는 게 어때?”
“다른 일?”
“내가 시청에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말이야. 빅터가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군.”



허만이 구미가 당기는 듯한 눈빛을 보이자 베스가 손가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여 그의 세텔라이트 속에 한 남자의 정보를 넣어 주었다.



“이번 광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하더군. 이놈 목에 3만 달러를 걸었다네.”



허만이 홀로그램 속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생긴 게 피래미 같은데?”
“그놈이 주동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생포하길 원하더군. 자네도 알다시피 광인 사태로 여기 경찰 인력도 꽤 부족한 상황이야.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비밀리에 알려주는 거라고.”



베스가 양주를 목에 넘기며 허만의 심사를 보는 듯 눈을 흘겼다.



“3만 달러를 준다는데 마다할 일 있나. 이거 이번에 제대로 한번 벌어가겠는걸? 하하하하.”



허만이 통쾌하게 웃자 베스도 따라 웃었다.



**************



“어제 그 남자, 도망쳤다는군요.”



외벽이 부서진 4층 건물에서 창밖을 보고 있던 시드에게 풍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



시드는 풍이 건넨 커피에서 올라오는 김을 유심히 쳐다보다 한 모금 마셨다.



“광인이 이렇게 많은 적은 처음이지만, 썩 유쾌하진 않군요.”
“평소엔 희열이라도 느꼈던 건가?”
“뭔가 좀 어려우면 도전 정신이 생기잖아요? 여긴 뭐랄까? 꼭 들쥐 사냥하는 그런 기분이죠.”
“들쥐 사냥?”
“어릴 때 징저우 근처에서 삼촌이 옥수수 농사를 했거든요. 7\~8월쯤 되면 옥수수가 이만큼 자라는데 그때마다 들쥐들이 꼭 나타나서 옥수수를 갉아 먹는 거예요. 들쥐 잡는다고 사방팔방에 연기를 피우는데, 우루루 뛰쳐나오는 놈들을 보면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었어요. 쥐들이 살겠다고 아둥바둥 도망다니는데.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살아 있는 걸 학살하는 그런 기분 말이죠…”



시드가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확실히 좋은 경험은 아닌 것 같군.”
“그렇죠? 하하.”



풍이 환기를 하려는 듯 눈을 돌려 밖을 보았다. 벽이 허물어진 건물들 사이로 푸른 잡초가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듯했다. 잡초라는 생물은 사람들이 사라진 곳이라면 씨를 뿌리지 않아도 어떻게든 찾아와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아무리 죽여도 되살아나는 사람들의 분노와도 같았다.



“제프. 뭐 해요?”



풍이 무전을 했다.



“보시다시피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시지.”
“아\~ 아주 훌륭한 군인이로군요.”
“여긴 누가 이미 쓸고 지나갔는지 쥐새끼 하나 없이 조용하군.”
“그래요? 그럼 제가 아주 재밌는 정보를 하나 알려드릴까요?”
“좋을 대로.”
“제가 지금 4배율 망원경으로 동네를 구경 중인데 말이죠. 이 망원경 성능이 정말 좋네요. 제프 씨 머리에 뻗은 핏줄까지 선명하게 보이네요.”
“죽고 싶은 게로군.”
“그럴 리가요. 근데 제프 씨가 있는 곳에서 다섯 블록 거리에 굉장히 낯이 익은 남자가 보이네요. 머리가 빨갛고. 같이 온 아가씨랑 데이트 중인가 본데요?”
“…”
“근데 녀석이 들어가는 건물 옥상에, 보자\~ 하나, 둘, 셋, 넷… 광인이 네 마리나 있군요.”
“뭘 말하려는 거야?”



시드가 궁금한 듯 풍에게 물었다. 풍은 벽에 기대어 있던 저격총을 들어 확대기를 장착하고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전 지금부터 저 옥상에 갇혀 있는 불쌍한 광인들에게 자유를 줄 겁니다. 녀석들은 해방을 맛보자마자 제프 씨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과 풍성한 머리를 가진 헌터를 보게 되겠죠.”



제프는 풍이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공연이라면 현장에서 직접 봐야겠지.”
“그럼요. 뭐니 뭐니 해도 공연은 라이브죠.”
“이봐. 그러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



시드는 풍의 장난기가 반갑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헌터라면 이 정도 기습은 해볼 만하잖아요? 여차하면 우리 베테랑 제프 씨가 구해줄 텐데요, 뭐.”



시드는 풍에게서 등을 돌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흠. 다 큰 성인 남녀가 한 방에 들어가면 언제쯤 절정에 이를까요?”



풍은 확대기로 광인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한 옥상 문을 조준경에 맞췄다.



[총소리]



총구를 벗어난 총알이 쾌속으로 공기를 가르며 옥상 문 손잡이를 그대로 박살 냈다. 총소리에 놀란 듯 광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괴음을 지르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문이 스르르 열렸다. 광인들은 비명을 지르다 하나둘 옥상 문 안으로 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건물에서 남녀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건물 입구로 알몸이 된 남녀가 뛰쳐나왔다. 그 뒤로 광인들이 그들을 쫓았다. 제프는 그 광경이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





“보급품이 왔습니다! 모두 이쪽으로 오세요!”



남자가 외치자 사람이 없을 것 같던 폐허 같은 건물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창가에서 밖을 흘깃 쳐다보던 사람들은 보급품을 보자 몸을 돌려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나온 팔뚝이 굵은 중년의 여인, 며칠을 굶었는지 힘없이 걸어 나오는 갈색 조끼를 입은 노인, 아기를 가슴에 안고 조그마한 포대기를 들고 온 아이 엄마, 몸을 비틀거리는 여인을 부축하며 보급품으로 향하는 어린 여자아이,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키 큰 남자. 사람들은 옆에 있는 헌터를 한번씩 쳐다보기는 했지만 보급품을 나눠 주는 남자의 말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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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아,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은데, 그동안 어떻게 숨어 지냈을까?”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신기한 듯 머리띠를 한 헌터가 말했다.



“은폐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존 능력이니까요. 카멜레온이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의 색깔을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죠. 포식자 역시 마찬가지죠. 먹이를 사냥하는 사자 역시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지 않고는 귀가 밝은 사슴을 잡아먹을 수 없는 것이죠.”



검은 선글라스를 한껏 치켜올리며 헌터가 말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할 수 없는 대단한 모험이, 예컨대 오줌을 먹는다거나 바퀴가 득실대는 지하실에서 잠을 잔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우웩, 사람들 앞에서 너무 더러운 이야기 아냐?”
“전 단지 과거에 있었던 생존 사례를 언급했을 뿐입니다.”



헌터는 움직이는 사람들을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쳐다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렇게 서서 떠들 힘이 있으면 보급품 배달이나 좀 돕지 그래요?”



빨간 투우사 복장을 입은 남자가 양쪽 소매를 걷어 큰 상자를 한쪽 어깨에 얹고는 지나가면서 말했다. 머리띠를 한 헌터와 선글라스 맨은 수긍하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같이 보급품을 나르기 시작했다.



“언니, 이거 봐. 빵이 이렇게나 많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보급품을 받은 여자아이가 상자에 있는 빵을 보며 신이 난 듯 숫자를 세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언니로 보이는 여자는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와, 며칠 만에 마셔 보는 물이냐. 이건 생명수야.”



남자가 생수통을 뜯자마자 물을 꿀꺽꿀꺽 넘겼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감염의 원인이 배수관에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수돗물을 쓰지 않았다. 물을 끓이면 괜찮다고 믿었던 몇몇 사람들은 끓인 물을 마시고 감염되어 일가족 모두가 처참하게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먹을 물이 필요했고, 몇몇은 산으로 가 계곡물을 길러 왔고, 또 다른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물을 담아 두었다가 끓여 먹었다. 그렇지만 행동에 제약이 컸기 때문에 물은 충분치 못했고, 저마다 생수통에 눈금을 그어가며 절제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조금 더 주세요. 저희가 있는 곳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 몫까지 받아 가시려면 그 사람들의 ID카드를 가져오십시오.”



보급품을 더 타려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헌터들은 본부에서 지시받은 대로 ID카드를 확인한 후 보급품을 나눠줬다. 보급품을 열어보고는 실망한 사람도 있었고, 이게 며칠분 식량으로 주는 것인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급품을 받고 내용물을 확인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받자마자 뺏기지 않으려고 은신처로 도망치듯 돌아가 버렸다. 일부 헌터들은 식량을 담은 상자를 들어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다른 헌터들은 혹시 보급품을 가지고 도난을 하거나 다투는 이가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갔다.



“이곳 사람들은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사는 겁니까?”



기갑부대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본부 사람에게 물었다.



“저희도 정확하게 알진 못합니다만, 민간인들을 위해 피난처를 별도로 구축한다고는 들었습니다.”
“피난처요?”
“아직 주변에 수색이 덜 된 곳이 많아 이곳은 위험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완전히 종료되기 전까지는 전력이며 수도며 어떤 것도 제대로 정상 운영되지 않을 테니, 피난처가 사람들에게는 더 나을 겁니다.”



기갑부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신없이 보급품을 챙겨 돌아가는 얼굴들을 보며 이곳 사람들은 참 운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사고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이들도 배부르게 먹고 마시며, 교양을 갖춘 도시인들이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보다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며 노예처럼 부려 먹었던 부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보다 못 배운 이들을 하등한 생물로 취급하며 무식하다고 비웃었던 똑똑한 지식인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자 공정하게 얻어왔다고 믿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가 아무 쓸모도 없어져 버린 채, 마르크스가 그렇게 바랐던 사회주의보다도 더 평등한 세상, 즉 모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산계급이 되어버린 완벽한 수평의 세상이 되어, 단지 보급품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피난민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