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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44. 드미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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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드미트리



『충격! 집단감염의 배후! 비서실장 드미트리!』

『드미트리! 바이러스를 퍼뜨려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다!』

『인류의 파멸자! 비밀이 밝혀지다!』


쓰레기 매립장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드미트리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민간인 집단 살해 미수와 권력 남용 혐의였다. 언론에서는 드미트리의 사건을 연일 뉴스 특보로 보도했다. 드미트리는 경찰에 체포되자마자 곧장 재판장으로 넘겨졌다.

“본 사건은 극악무도한 살인사건으로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합니다.”

“피고인, 최후 변론 하세요.”

재판장 안의 수많은 참관인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드미트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시민 여러분. 최후 변론에 앞서 저희 골든타워의 엄격한 행정조치에 대해 심히 놀라셨을 시민 여러분들을 위해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드미트리가 참관인 앞에 고개를 숙여 인사드리자, 참관석에선 “닥쳐!”, “혐오스럽다!”와 같은 욕설과 함께 야유가 쏟아졌다. 드미트리는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을 이어갔다.

“모든 행동에는 그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동기부여라고 하고 누군가는 생각, 사고, 심지어 철학이라고까지 말하지요. 저는 여러분 앞에서 철학을 들먹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내린 행정조치에 대해 그것이 어떤 적법한 절차와 근거가 있었는지만을 이야기해 드릴 뿐입니다.”

드미트리의 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산 듯 재판장은 이내 조용해졌다.

“대재앙이 있은 뒤로 현재까지 인류는 줄곧 ‘광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비인류군에서 비롯된 존재가 아닌 우리 인류 스스로에게서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죠. 우린 지금껏 그 바이러스와도 같은 ‘광인 현상’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연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치료제는커녕 아직도 그 원인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드미트리가 양팔을 벌리며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광인 현상으로 인해 인류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었고 역사는 퇴보해 갔지요. 그리고 그 아비규환과도 같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세운 것이 바로 이 ‘카스트 지부’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를 위해 고군분투하신 저 헌터라는 직종을 만든 것 또한 지부의 뜻이죠. 자, 그럼 이 헌터라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어떤 사회적 합의, 즉 법령이 있었을까요? 바로,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국안법』입니다. 길게 풀어보자면 『국가와 인류의 안녕을 위한 법률』입니다. 처음엔 국가와 인류의 생존을 위한 법률이었지만 생존이란 뜻이 너무 척박하게 느껴져 일부 단어에 수정이 있었지요.”

드미트리는 자신의 유식함을 자랑하듯 목을 뒤로 빼며 거드름을 피웠다. 그 앞에 관중들은 일순간 드미트리의 강의를 들으러 온 학생들처럼 온순해졌다.

“이 『국안법』은 현대 사회의 핵심이며 우리가 ‘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법률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재앙 이전에 인류는 『헌법』이라는 것을 최상위법으로 두었겠지만 이제 지금은 모든 법을 초월한 가장 우선되는 법은 당연히 이 『국안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중들은 드미트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국안법』에는 인류가 광인과 맞서 싸워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모든 철학과 사상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법으로 인해 우리는 현재와 같은 안녕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죠. 자, 그러면 제가 왜 이 『국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드미트리가 청중에게 묻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자 대중은 자신에게 질문할까 봐 겁이 나 그의 눈을 피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일련의 행정조치는 모두 이 『국안법』의 한 조항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조항이며 제 삶의 가치관, 그 어떤 성경의 문구보다도 우선시하는 조항입니다. 국안법 제37조 ②항, 인류의 안녕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는 법률로써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수단이라 함은 공권력의 투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는 턱을 치켜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국안법』의 대전제 아래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찍이 저희 골든시티는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그 조례의 제정을 위해 이번 대량 광인 사태를 신속히 해결해 최대한 많은 생존자들을 남기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뮬레이션 기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이번 시뮬레이션을 위해 국내외 유수한 전문가들을 초빙해 다양한 경우의 수를 토대로 여러 결과를 도출하였으며, 지금 여기 그 최적의 결과를 여러분들께 공개하는 바입니다.”

드미트리의 깜짝 증거자료에 재판장은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의 최후의 진술은 모든 재판 심리의 마지막 절차이며 검사 측에서는 더 이상 반박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고민하는 듯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궁금해했기에 증거를 즉시 허락했다.

“이 연구보고서는 대략 15,000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지금 다 읽어드릴 순 없고, 결론만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통계적 접근을 통해 85\~95% 사이의 정화율에서 가장 큰 생존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조건은 95%의 신뢰구간에서 유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제가 행정조치를 내린 90%의 룰은 바로 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전문가들의 보고서에 기반을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관중석은 숫자 앞에 조용해졌다.

“자 어떻습니까? 이래도 제가 인류의 파멸자인가요? 전 어디까지나 제 자리에서 제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 일인즉슨, 제 관할 하에 있는 나의 사람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살려보고자 하는 저의 노력이 있었음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과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는 꼭 알아주시기를, 그래서 이 힘겨운 상황이 하루빨리 극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상입니다.”

드미트리는 마지막까지도 뜻을 굽히지 않고 당당히 변론했다.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말에 홀린 듯 아무 말이 없었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판장을 가득 채웠던 분노의 기운이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최후 변론이 있은 후 30분간 휴정이 있었고 다시 재판관들은 돌아왔다. 그들은 민간인 집단 살해 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권력 남용 행위를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사람들은 분노의 대상을 상실한 듯 허탈감에 할 말을 잃었다. 드미트리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


드미트리의 재판이 있은 뒤로 도시의 민심은 더 악화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조작된 재판에 대해 항의했고 다른 도시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빅터에게 게릴라 식으로 쳐들어와 질문 공세를 펼쳤다. 대부분의 내용은 드미트리에게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와 그의 행동을 알고 있었는지였다. 빅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드미트리의 배후로 ‘빅터’를 지목했다. 빅터가 드미트리를 앞세워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원흉이 빅터 시장에게 있으니 그를 재판장에 세우지 않고서야 사건이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았다. 빅터 시장을 몰아세우기 위해 밤낮으로 거센 폭동을 일으켰다. 골든타워의 주요 기관들이 불에 탔다. 화려했던 골든타워의 밤은 매일 밤 사람들의 시위와 분노로 가득했다. 빅터는 시위대를 내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7653번, 면회”

어두운 감방에 철제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땅딸막한 늙은 남자는 열린 문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는 간수를 보며 실룩실룩 웃었다.

간수들이 드미트리를 데리고 간 곳은 접견실이었다. 문이 열리자 그 앞에는 반가운 얼굴이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빅터였다.

“드미트리! 나의 친구!”

빅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드미트리를 안았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드미트리를 꼭 껴안았다. 드미트리 역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할 말을 잃고 목이 멘 듯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가엔 눈물이 글썽거렸다.

“못 본 사이 주름이 많이 늘었구만. 자네 주름의 굴곡엔 이미론의 지혜보다 더 깊은 시름이 보이네.”

“시장님은 언제나 그렇듯 멋쟁이십니다. 이제 올림푸스 산을 점령한 번개의 왕이 되신 듯합니다.”

빅터는 웃으며 드미트리를 자리에 앉혔다.

“어때, 이곳은 지낼 만한가?”

“아무렴요.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물레방아를 돌리고 싶을 지경이죠.”

“자네 유머는 여전하구만. 한잔 들게.”

빅터는 미리 준비해둔 브랜디를 꺼내 드미트리에게 한잔 가득 따랐다. 카라멜 색을 띤 브랜디는 밖에서 비치는 햇빛에 달콤하게 빛났다. 드미트리는 오랜만에 성배를 마주하듯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았다.

“밖은 어떻습니까? 저 무지하고 우매한 대중들은 아직도 시장님이 만든 황금의 역사를 신기루라고 평가하는지요? 그들은 아직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채 주인을 잃은 개마냥 불쌍하게 짖어대는지요? 땅에도 주인이 있고 물건에도 주인이 있듯 이 도시에도 빅터라는 주인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저들은 시민불복종이니 자연법이니 떠들어대며 자신이 주인인 양 착각하고 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주인이신 시장님께선 그들을 불쌍히 여겨 내몰아치지 않으시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죠. 그런 분을 위해 대의에 따라 행동한 제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으니 저는 그저 하루하루가 보람차고 온기가 충만합니다.”

드미트리는 오랜만에 찾아온 자신의 우군에게 당당하게 그의 뜻을 전했다. 사람이 감옥에 가면 대담해진다더니 그는 전보다 빅터를 대함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마치 자신을 절대선을 위해 희생한 영웅인 양 착각했다.

“자네는 더 담담해지고 사내다워졌군. 모든 나의 사람들이 다 자네와 같다면 얼마나 좋겠나? 나의 욕심이겠지.”

빅터는 기가 죽은 듯 자신의 잔에 든 술을 홀짝 마시며 드미트리를 쳐다봤다. 드미트리는 가만히 있다 손에 든 술이 생각나 잔을 입가에 대고 한잔 쭈욱 들이켰다. 60도에 육박한 독한 알코올은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내려가 몸 안을 씻어내렸다. 드미트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실로 오랜만에 맛본 술맛에 황홀해 보였다. 그는 기분이 좋아진 듯 그들만의 서사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기억하십니까? 시장님이 처음 부임하시던 날. 사람들은 살렘의 왕이 재림했다며 시장님을 뵙기 위해 마을 입구까지 줄을 섰었죠. 시장님께서 군중 앞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사람들은 시장님을 둘러싸고 축복을 받고자 너도나도 손을 뻗었죠. 그것은 흡사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과 같았습니다. 여인들은 시장님의 황금빛 찬란한 머릿결을 찬양했습니다. 남자들은 시장님의 늠름한 어깨를 보며 부러워했습니다. 모든 예언가들은 이제 새로운 지도자가 왔으니 한낱 시골 마을에 불과한 이 도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며 축복해 주었죠.”

드미트리는 슬슬 발동이 걸린 듯 혈액이 돌며 얼굴에 붉은빛을 띠었다. 그의 좁쌀 같던 눈은 어느새 소의 눈망울처럼 커다랗게 빛나며 커졌다.

“어느 날 시장님께서는 다 쓰러져 가는 폐허가 되어버린 지역을 보시며, ‘이곳을 황금빛 찬란한 도시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찾는 땅이 되도록 하겠다’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시장님을 보며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군께서 불가능한 일에 몰두하여 스스로를 위태롭게 한다고 말이죠.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말렸습니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며 그것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그런 허망한 꿈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며 즐거운 전원생활을 같이 누리자고 시장님을 다독였지요.”

드미트리는 빈 잔을 들어 마치 아직 술이 남아있는 것처럼 들이켰다. 그는 술잔에 떨어진 몇 방울을 털어내며 말라버린 사막에서 샘물을 구하듯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빅터는 급히 유리병을 들어 그의 잔에 다시 한잔 가득 황갈색 고운 술을 따랐다.

“골든타워에 관광객들이 처음 몰려든 날! 저는 그렇게 많은 인파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흡사 목초지를 찾아 전진하는 물소 떼와 같았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열광의 도가니 속에 저는 도시 전체가 불타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관광객들은 환희에 가득 차 골든타워를 떠날 줄 몰랐고 도시 이곳저곳에선 매일같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골든타워에서 만든 재원으로 남은 자치군들에게 처음 보조금을 수여하던 그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자신들이 어리석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들 중 한 노인은 예언의 그분께서 발현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모두 하늘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시장님이 가는 곳마다 축복의 꽃을 던졌습니다.”

빅터도 그때를 기억하는 듯 눈이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우린 수많은 기적을 이뤘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 그들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죠. 남편을 잃은 가엾은 여인들을 위해 그들이 안심하고 일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근로제도를 정비했지요. 자식이 없어 홀로 쓸쓸히 늙어가는 노인들에게 공동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었고,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 평생 홀대받으며 살아가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일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드미트리는 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치안은 또 어떻습니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광인들 속에서 안전하게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북부청으로부터 헌터지부를 허가받아 시민들을 보호했습니다. 행여 사람들이 광인으로 변하지 않을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삶을 만족하며 살아가게끔 다독이며,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뿐만입니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없도록 관내에서 모두가 동일하게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주거지역을 직접 관리했고, 행여 골든타워에서의 화려한 삶을 찬양해 소외감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끝없는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었지요.”

드미트리는 남은 술을 다시 벌컥 들이켜며 목에서 타들어 가는 즐거움을 또 맛보았다. 그러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올랐는지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이 놈들은 배부른 돼지 마냥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더 기어오르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자신들에게 이미 주어졌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도 골든타워처럼 만들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지요.”

드미트리의 낯빛은 악마 메피스토처럼 무섭게 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불화가 발생할 때마다 그 문제를 우리에게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 산불이 번질 때도, 폭풍우가 몰아쳐 물에 잠길 때도, 황사가 번져 기관지염을 앓게 되었을 때도, 업주의 욕심으로 사람이 죽어 나갈 때도, 그들은 걸핏하면 인재(人災), 인재, 그놈의 인재를 거들먹거리며 정부에서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며 욕을 해댔죠. 그리고는 자신이 낸 세금이 정당하게 쓰이지 않는다며 우리를 도둑놈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미트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은지, 사사로이 방송을 만들어 우리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의혹을 제기하고, 헐뜯고 비난하며 선량한 사람들마저 선동해 저희를 썩어빠진 고인물에, 퇴물의 대상으로 깎아내렸죠. 시장님을 로마 황제 시저에 비유하며 많은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농락한다며 허위 사실까지 유포하기까지 했죠. 하! 시저라니! 배은망덕한 놈들! 아무리 못 배우기로서니 자신들에게 먹이를 준 사람을 그런 식으로 비유하다니!”

드미트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비록 가난했지만 옛날이 좋았다며 떠들어 대기 시작했죠. 하! 우습지 않습니까? 과거가 좋았다니요? 그럼 그들은 자급자족하던 옛날로 돌아가 산나물을 캐먹으며 매머드와 맞서 싸워 오늘도 내일도 남자들이 죽어 나가는 그런 원시시대를 원했나 보군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그리고는 모든 사건의 원흉을 시장님과 골든타워에게 돌려버렸죠. 그래서 골든타워만 없어지면 자신들이 마치 영원한 평화를 얻을 것처럼 떠벌리기 시작했죠. 우리가 가져다준 환희와 찬사가 비난과 절망으로 변해 돌아왔던 겁니다.”

드미트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자치군별로 자립해서 살도록 놓아주었더니 또 어땠습니까? 왜 보조금을 끊느냐며 이제 생명줄을 위협하느냐고 들고일어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가관이지 않습니까? 저자들의 작태를! 모두가 다 황제처럼 살기를 바랐나 본데 그것이야말로 욕심 아니겠습니까? 이 모든 게 루소 같은 놈들의 썩어 빠진 자연주의 사상을 잘못 배워서 이렇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주인이라니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죠!”

드미트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님께선 끝없는 인내와 지혜로 우매한 민중을 다독이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느님도 무심하시죠. 어떻게 시장님 같은 분에게 이런 수난을 겪게 한단 말인가요? 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양들은 늑대의 먹이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니까요. 시장님께서 약을 건네셨던 날, 전 결심했습니다.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마땅히 그 희생은 숭고히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맹세코 저에겐 지난날의 행동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을 뿐입니다.”

드미트리가 말하자, 빅터는 마치 기다렸던 말이 터져 나온 듯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블라인드 사이로 펼쳐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그는 무언가 망설이는 듯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드미트리. 자네는 그 일을 후회하나?”

빅터의 음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고 무거웠다. 이미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드미트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천둥왕에 맹세코 단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그것은 곧 제 의지이며 제가 이 세상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제 자아의 신화입니다.”

드미트리가 말을 마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빅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빅터는 뒤를 돌아, 드미트리를 보더니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드미트리에게 가 그 투박한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고맙네.”

빅터의 두 눈은 글썽거렸다. 드미트리는 빅터의 그런 모습에 또 한 번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드미트리는 빅터에게 목례를 하고는 간수들과 함께 돌아갔다. 빅터는 멀어져 가는 드미트리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


드미트리가 감방에 이르자 차가운 철문이 닫혔다. 그는 오랜만에 맛본 이 알딸딸한 느낌이 퍽이나 좋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고 조명이 따라 돌며 마치 연회장에 있는 듯 착각에 빠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침대로 가 무거운 몸을 뉘었다.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는데도 그가 보고 있는 세상은 계속해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는 당연히 해야 될 말을 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그의 말이 침울했던 자신의 주군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다시 한번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는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이제 세상이 다시 한번 달라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이 감방에서 나가게 되는 그날, 그의 상관은 자신에게 더없는 환희와 기쁨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는 이미 빅터의 칭찬에 행복했다. 그의 말 한마디,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 그것은 천금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받을 수 없는 무한한 신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쓸쓸히 녹슬어가는 화성탐사선과도 같았다. 그는 저물어져 가는 석양빛을 맞으며 조용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