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re]_제 3 화 『 집단감염 』_45. 죄와벌
45. 죄와벌
드미트리는 죽었다. 차가운 감방에서 목이 매어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책상에는 유서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들에 대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사람들은 거사를 눈앞에 두고 갈곳을 잃어버린 듯 허무함에 빠졌다. 이 끔찍한 사태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버리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시위대는 피켓을 내렸다. 매일 시위로 축제를 이어갔던 시청 앞 광장은 개미 한 마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텅 빈 채 공허함만이 남았다..
남부의 헌터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포인트는 환전되어 개인 계좌로 입금되었고 헌터들은 상금을 쓰며 피로를 풀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헌터들로 인해 ‘오래된 골목’은 시끌벅적했다. 배너는 프링글과 브라켓에게 맥주를 건넸다. 헌터들은 저마다 무르만스크에서 있었던 자신의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에이프릴은 주인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짐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긴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앉아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을 쳐다봤다. 괴음을 지르며 달려오는 광인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아이의 얼굴. 그런 장면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순간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내쉬었다.
그때 그녀의 세텔라이트가 깜빡였다.
“수신”
세텔라이트가 비춰준 화면에는 슈프리머의 얼굴이 나왔다.
“에이프릴! 야, 이 좋은 날에 집 안에 콕 박혀서 뭐하는 거야? 여기 지금 완전 축제분위긴데 말이야! 오! 맥스! 너도 살아있었냐? 아하하. 네 얼굴 십년은 늙어보인다. 여기봐봐. 지금 분위기 장난 아니야! 배너씨가 복귀 기념으로 맥주를 쏘기로 했단다! 저기봐라. 이봐 오비!”
화면이 움직이며 오브라이언이 다른 헌터들과 함께 3000cc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원샷을 하고 있었다. 맥주를 다 마시자 맥주잔을 바닥에 내려치며 야수와 같은 괴성으로 소리를 질렀고 사람들은 그를 보며 환호했다.
“저자식. 완전히 맛이 갔어! 오늘 술로 끝장을 낼 기세라고! 이봐. 너도 빨리오라고! 이건 살아돌아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야! 으하하하”
슈프리머의 통화가 끊어졌다. 에이프릴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혼자가 된 이 순간을 그대로 즐기기로 했다.
쓰레기 매립장에 갇힌 민간인들을 구한 사건으로 남부의 헌터들은 세간에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폭파 현장과 구출된 사람들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그들은 아직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듯 목소리가 떨렸다. 헌터들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들은 벌써 광인으로 변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헌터들도 인터뷰에 나왔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한 것에 당연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에이프릴도 인터뷰를 요청받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헌터들을 이끌고 민간인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의 얼굴이 뉴스 일면에 나오며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녀의 메일함에는 그녀를 섭외하기 위한 방송국 제작진의 메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
빅터의 집무실.
그는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뉴스에는 남부 헌터들의 용감한 영웅담에 대한 내용이 보도됐다. 드미트리의 사망소식도 나왔다. 드미트리가 죽었지만 빅터 시장의 조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무심히 티비 전원을 꺼버렸다.
똑똑
시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
빅터가 말하자, 어린 여비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에 고용된 새 비서인 듯 해보였다. 그녀는 한 손에 꽃이 담긴 바구니를 든 채 빅터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포식자 앞에선 토끼처럼 떨었다. 빅터는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웠다.
“어떤 분께서 시장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누구던가?”
“따로 이름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만 신부님처럼 보였습니다.”
“아! 그래. 이리 놓게”
그녀는 조심히 한발짝씩 걸음을 옮겨 빅터 앞으로 왔다. 그녀의 몸에서는 향긋한 과일 향이 났다. 빅터는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며 그녀의 향을 맡았다. 여비서가 상체를 숙여 바구니를 탁자 위에 올려다 놓았다. 빅터는 숙인 그녀의 모습 뒤로 몸에 달라붙은 치마와 검은 스타킹을 음흉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비서는 얼른 바구니를 놓고는 빅터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 나가려 했다.
“아! 잠시!”
빅터가 여비서를 불러 세웠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빅터를 돌아봤다.
“미안한데 저기, 유리 좀 닦아 주겠나? 얼룩이 묻어 영 엉망이군.”
빅터는 책상 뒤에 있는 유리벽을 가리켰다. 그녀는 유리벽과 빅터를 번갈아가며 살피다가 정신을 차린 듯 두리번거리며 타월을 찾았다. 하지만 집무실 어디에도 타월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타월을 찾는 걸 눈치챈 듯, 빅터는 자신의 왼쪽 가슴에 있던 고급 원단의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조심히 손수건을 받고는 유리벽으로 가 유리를 닦기 시작했다.
그녀는 빅터가 무슨 짓을 할지 긴장을 놓지 않은 듯 유리벽에 비친 빅터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존재를 잊어 버린 듯 무심하게 티비를 켰다. 티비소리가 들리자 안심한 듯 그녀는 유리를 닦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지나가는 곳엔 여전히 아름다운 골든타워의 황금색 야경이 빛났다. 어두운 밤 중에 빛나는 불빛은 마치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였고, 그녀는 금세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넋을 놓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가장 잘 보이는 곳. 만약 신이 있다면 아마 인간을 이렇게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도시의 불빛들은 무작위로 춤을 췄다.
그때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가리는 느낌이 났다. 아차, 하는 순간 빅터의 거대한 손이 그녀를 와락 안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빅터의 거대한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빅터는 자신의 큰 얼굴을 그녀의 오른쪽 뺨 근처에 갖다 대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아. 이 냄새야. 내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군.”
빅터는 계속해서 거대한 코를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빠져나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힘을 썼다. 하지만 빅터의 팔은 쇠창살보다 더 단단하게 그녀의 몸을 꽉 조였다. 빅터는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더듬거렸다.
“제발. 그만하세요. 제발.”
그녀는 애처로운듯 빅터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빅터는 이미 여자의 몸에 정신이 나간 듯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탐색했다. 그녀는 계속 몸부림을 치다 빅터가 그녀의 한 곳에 집중하는 사이 잽싸게 손을 풀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는 힘에 겨운 듯 숨을 거칠게 쉬었다. 아무리 대중에게 조롱받는 빅터였지만 그녀에게는 거대한 존재였다. 그녀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밀려와 후다닥 문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쾅]
문이 닫혔다. 빅터는 비서가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피식하고 실소를 하더니 이내 재밌다는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알았다. 아무리 인간들이 신을 조롱하고 비웃어봐야 그들은 곧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결국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신과 닮은 자신만이 계속해서 이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하늘이 떠나갈 듯 호탕하게 웃어댔다.
어느 정도 웃음이 가시자 그는 힘이 빠진 듯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오며 탁자 위에 있는 바구니로 향했다. 라탄 바구니에는 안개꽃과 함께 붉은색 노란색 장미꽃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꽃들 사이로 짙은 초록색의 샴페인병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 유리잔과 샴페인 병을 놓았다. 꽉 막힌 코르크 마개를 오프너로 빙글빙글 돌리더니 레버를 내려 한번에 마개를 반 이상 올렸다. 그리고 남은 부분에 힘을 주어 밀자, 시원하게 마개 뽑히는 소리가 났다.
그는 천천히 병을 기울여 유리잔에 술을 따랐다. 유리잔에 든 술은 투명한 노란 빛을 띠었다. 얼핏 봐도 달달해 보였다. 그는 유리잔을 기울여 탄산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보다가, 입가에 잔을 가져다 댔다.
그가 와인을 한모금 마시자 시원하고 달달한 느낌이 목구멍까지 전해졌다. 그는 술이 만족스러운 듯 한잔을 쭈욱 들이켜 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유리잔을 놓고 다시 몸을 소파에 기댔다. 그는 이 순간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자신을 욕해봐야 그것도 결국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미트리의 죽음으로 끝난 이 사태는 곧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이고 그는 다시 좋은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서 영웅으로 추앙받게 될 것이다. 세상은 참 단순하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니까.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유리잔에 술을 가득 부은 다음, 잔을 들고 일어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향했다. 유리벽 앞에 선 그는 그 너머로 보이는 황금빛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언제까지고 이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것이다. 또 다른 위험이 있다면 언제나 그랬듯 희생양을 만들어 위험을 제거해 나가면 된다. 그 혼자만이 언제나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그는 자랑스런 자신의 미래를 위해 건배를 했다. 그리고 입가에 술을 가져다댔다.
[쨍그랑.]
빅터의 손에 쥐어졌던 유리잔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하게 깨졌다. 고급 카펫 사이로 쏟아진 술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손에 들어간 힘이 풀리지 않았다. 내부로부터 결박된 듯 그의 손은 뻣뻣하게 굳어갔다. 빅터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빅터는 순간 고개를 돌려 샴페인병을 돌아봤다.
생각났다.
‘과거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독사의 몸에서 채취한 독입니다. 「분가로톡신」이라는 성분으로, 아주 소량으로도 사람을 급사시킬 수 있죠. 저흰 이 독을 아주 미세한 단위로 나눠 그것을 다시 바이러스화했죠. 이 독은 어떤 경로에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번 몸에 들어온 독은 순식간에 뇌로 전달돼 신경세포를 파괴할 것입니다. 저희가 원래 의도했던 것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임상실험 도중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독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롭게 자기 세포를 구현해 낸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영향이 사람의 정신계를 교란시켜 착시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죠. 곧 미친 사람이 돼버린 겁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빅터의 머릿속엔 자신을 보며 순수하게 웃던 그 사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눈동자를 보이지 않았다. 길고 가늘게 늘어진 눈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게 했다. 정말 기묘한 상이라 생각했다. 그 가냘프게 여린 외모에 하얀 얼굴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뒤에 검은 악마가 자신을 향해 비웃고 있는 듯이 보였다. 빅터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그는 끓어오르는 통증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도시의 야경.
어두운 밤엔 찬 바람이 분다. 가로수 불빛이 빛나고 차들이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빛을 내며 지나간다. 화려했던 도시도 늦은 밤이 지나면 하나 둘 불이 꺼지고 길가에는 행인들이 쓸쓸히 집으로 돌아간다. 멀리서 바라본 올림푸스 시티 꼭대기층은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빛은 도시의 관제탑처럼 언제나 계속 밝게 빛나며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키토. 어때? 이 곳도 내가 말한 그대로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하얀 얼굴의 남자는 얼굴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쓸쓸한 눈빛으로 소멸해가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아련한 눈빛 속에서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리 꺼져. 이 더러운 난민 녀석들아. 망국의 잔재를 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거야! 너희들의 헛된 신념과 지긋지긋한 싸움으로 스스로 사회를 포기해버렸으면서 왜 잘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와서 거두어 달라는 거지? 인과응보다. 너네들의 나라가 없어진 것도. 너네들이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모두가 다!」
「선생님. 저 아이의 몸에선 냄새가 나요. 집에서 잘 씻지도 안나봐요. 있지도 않은 자신들의 고향을 추억하며 이 곳을 함부로 이야기해요. 염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런 아이들을 우리가 왜 보호해야 되는 거죠?」
「난민놈들이 도시를 아주 형편없이 만들어버렸어. 저들이 사는 곳마다 범죄와 도둑질이 끊이질 않아.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정든 도시를 떠나게 만들지. 난 어제도 저놈들이 싼 값에 몸을 팔고 음식에다 오줌을 누는 것을 봤어. 정말 상종도 하기 싫은 놈들이야!」
「꺼져버려. 이 돼지 같은 놈들. 너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그는 빅터 시장과 간부들의 모습도 떠올렸다.
「시장님. 코어에서 또 난민 이주를 요청했습니다. 이번에 규모가 훨씬 더 큽니다. 2백만명이라고 합니다」’
「더러운 난민 놈들. 어째서 망국의 나라에 갇혀 같이 죽지 못하고 영혼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인가. 왜 코어에선 우리에게 난민을 떠넘기는 거지? 그렇게 소중하면 자신들이 직접 돌보면 될 것 아닌가. 자신들은 거대한 장벽에 가려 세상과 격리 시켜 놓고는 우리에게 이런 짐을 떠 넘기냔 말이야. 내 소중한 도시가 더럽혀지는 것을 난 지켜 볼 수 없어! 제일 말썽을 일으키는 지역으로 난민들을 넘겨버리게. 아니 어디든 보내버리란 말이야.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추악한 동물이지. 신이 만든 실패작. 그런 실패작 따위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시다니요. 당신은 정말로 어리석군요.”
그는 상념이 끝난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반짝이는 도시를 뒤로한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제 3 화 『 집단감염 』
끝.